책 ‘서울의 달빛 0장’은 한 부부의 이혼을 다룬 중편 소설이다. 작가 김승옥은 1977년에 발표한 해당 작품으로 같은 해 제1회 이상문학 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배우 ‘한영숙’을 만나고 그녀가 유명 배우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호감을 느낀다. 옆 자리에 앉은 것을 인연으로 그녀와 연인이 돼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군 복무 시절 앓았던 성병이 우려됐던 그는 병원 검사를 받게 되고 죄책감 때문에 첫날밤 아내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한편 아내와의 첫날밤, 주인공은 아내가 처녀가 아니란 것에 당황함과 더불어 자신이 처녀가 아니란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아내의 태도에 추악함을 느낀다. 이후 아내가 낙태 경험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은 아내를 ‘도깨비들이 실컷 뜯어먹다 싫증이 나서 던져 준 썩은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친구들과 술집에 간 주인공은 그곳에서 아내를 접대부로 마주친다. 이를 계기로 아내와 이혼한 그는 이혼의 충격으로 인해 문란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혼으로 인한 공허함은 그를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도록 부추긴다. 이전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면 그녀에게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깨달으며 여자의 과거까지 소유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닫는다. 이에 어머니가 사주신 아파트를 팔고 고급 승용차와 적금 통장을 마련한다. 자 동차를 끌고 아내에게 돌아가 자동차를 구경시키며 통장을 들이밀지만 그녀는 이를 위자료라 여기고 이혼을 통감하며 침울해한다. 주인공은 끝내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지 못하고 대신 가끔 한영숙의 아파트로 놀러가도 괜찮겠냐는 물음을 내뱉는다. 그 순간 그녀에게선 코피가 난다. 주인공은 약솜을 사오기 위해 약국에 다녀왔으나 찢어진 통장 조각과 이별의 실감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과 아내의 관계를 파멸로 이끈 건 ‘무언가’의 부재다. 부재란 무언가가 과잉돼 있을 때 존재한다. 주인공에겐 ‘현재’가 부재한 다. 아내의 과거까지 가지려는 그의 욕망은 자신의 성병 이력을 없 던 일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한 욕망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현재보다는 자폐적인 부끄러움에 갇힌다. 한편 아내에겐 ‘부끄러움’ 이 부재한다. 돈이라는 미명 아래 행위의 결과와 영향에 대한 책임 의식이 결여돼 있다. 남을 비난할 근거를 찾는 것을 어렵고 불가능한 일처럼 느끼는데 그것이 결국 자신에게 향하는 비난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 기 위해선 지속성을 추구하기 위한 탐구가 꼭 필요하다. 관계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타자와 내가 연결된 것으로 각자의 상대성이 충돌하는 지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아내가 가진 부재 또는 과잉은 거래의 만능화 의식이다. 그것은 자본이나 특정한 재 물로 즐거움의 감정을 사고팔 수 있으며 사랑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작가는 사랑을 거래로 재 단한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의 파멸을 그리며 이러한 관계는 결코 지속될 수 없고 그 말로는 비참함뿐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자본과 일시적 자극의 쾌락으로부터 벗어난 숭고란 무엇일까. 작가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작품엔 △노골적인 성적 표현△비속어△신랄한 묘사가 서슴지 않게 등장한다. 이러한 자극성은 자아 속 깊은 내면의 세계를 천착하게 한다. 비극의 세계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비극의 유혹과 말로를 탐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천착은 자기 자신으로 향해 비극의 극복을 꾀할 수 있게 한다.
김상헌 기자 06h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