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상실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한다. 연인이나 친구와의 이별, 소중한 공간이나 대상과의 결별 등 상실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상실의 격랑이 지나간 자리엔 공허와 결핍이 남는다. 이런 상실이 수반하는 고통은 너무도 실체적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화하고 사라진다는 이치는 너무도 자명하지만 그 상실이 우리를 덮칠 때 그것은 개인적인 서사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던 ‘상실’은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현재의 사건이 된다. 그리고 현재적인 사건이 된 이상 우리는 그것이 불러오는 고통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은 이런 상실의 고통을 다루는 단편영화다. 영화는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로 아이를 잃은 한 부부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부부는 자녀를 떠나보낸 슬픔으로 암담한 나날을 보내며 집안 곳곳에 놓인 아이의 흔적을 발견하곤 눈물을 흘린다. 비탄에 잠긴 부부는 아이와 함께했던 추억과 과거의 장면들을 회상한다. 학교에서 총성이 들리는 장면을 끝으로 회상은 멈추고 부부는 슬픔 속에서 서로를 껴안는다. 부부의 그림자가 교차하고 아이의 형상이 나타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약 12 분으로 매우 짧지만 상실의 고통을 심층적이고 농밀하게 조명한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자’는 관객에게 큰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첫 장면인 식사 장면에서 남편과 아내의 그림자는 서로 증오하고 다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선 부부의 그림자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만다. 상실은 우리를 과거에 고착시킨다. 상실이 일어난 시점에서 우리의 시간도 멈추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을 탐닉하고 후회와 죄책감에 잠식되는 것이 상실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이다. 때론 고통에 압도된 나머지 서로를 비방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그림자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상실을 극복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영화는 그 해답을 고통을 매개로 한 사랑과 연대에서 찾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부의 그림자가 서로를 껴안을 때 아이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참사와 같은 사회적 상실에 대한 애도는 이와 같은 연대의 기반 위에서 성립한다. 상실에 근거한 연대는 상실을 부인하거나 섣불리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실을 오롯이 우리의 상흔으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수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실이 만들 어낸 공백의 지점에 상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출현한다. 동일한 고통을 공유하는 이들은 연대를 통해 고통 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대는 상실과 고통이 우리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확증이다. 그리고 이런 확증만이 상실로 멈춰버린 우리의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우리의 슬픔을 유효하게 애도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서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