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참사 앞에 무너진 삶의 터전

등록일 2023년03월02일 00시5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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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Gaziantep) 인근에서 모멘트 규모 7.8에 달하는 역대 최대 강도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본진에 뒤이은 여진과 유발지진이 연달아 발생하며 인명피해와 각종 물적·재산상의 피해도 가중됐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며 각종 구호활동과 애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진으로 인한 피해△피해가 심화된 원인△국제사회의 반응과 대응에 관해 알아보자.

 

◆지진으로 인한 피해

지난달 6일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에서 모멘트 규모 7.8의 지진이 발 생했다. 첫 지진 발생 9시간 후엔 2차 유발지진이 모멘트 규모 7.5로 카흐라 만마라쉬(Kahramanmaraş)를 강타했다.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발생한 지진 중 역대 최대규모다. 실제로 미국 지질조사국(이하 USGS)의 셰이크맵(Shakemap)에 따르면 이번 지진의 최대 진도등급은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하는 X로 계측됐다.

 

지진으로 인한 가장 심각한 피해는 단연 인명피해다. 지난달 20일 기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시리아와 튀르키예의 사망자 수를 합쳐 4만 7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Golden Time)’인 72시간을 넘긴 탓에 사망자 수가 급증한 것이다. 또한 구조와 수색작업이 진전되면서 피해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13일 USG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명을 넘길 확률은 26%에 달한다. 유엔(UN) 역시 사망자가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해도 막대하다. 지난달 12일 튀르키예기업연 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예상 재산피해액은 840억 달러(한화 약 107조 원)에 달한다. 이는 이스탄불 인근에서 발생한 1999년 이즈미트(İzmit) 대지진에 기반해 추산된 것으로 튀르키예 전체 국내총생산 (이하 GDP)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주거용 건물에서 708억 달러(약 89조 800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고 104억 달러(약 13조 2000억 원)의 손실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 예측됐다.

 

문화재나 유물의 손상도 지진이 불러온 피해 중 하나다. 튀르키예 국영 아 나돌루(Anadolu) 통신에 따르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지안테프 성의 옹벽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심각하게 파손됐다. 또한 △디야르바크르(Diyarbakır) 성채△아르슬란테페(Arslantepe) 언덕 △헤 브셀(Hevsel) 정원 등의 유적들도 붕괴되거나 크게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시리아에서도 문화유산 피해가 발생했다. 시리아 국가유산박물관국 (DGAM)에 따르면 역사 유적이자 고대 아랍식 건축물인 알레포(Aleppo) 성 채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부분적으로 파괴됐다.

 

2천3백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의 거취도 문제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 중 38 만 명의 이재민만이 임시숙소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당수의 이재민은 구조 이후 마땅히 머물 만한 장소가 없어 추위 속에서 노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각에선 이런 이재민들이 경험할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시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인한 기반 시설 파괴로 보건상황이 열악하고 지진의 여파로 △물△연료△전력△통신 공급이 중단돼 각종 감염병에 취약한 환경에 노출됐다는 게 세계보건기구(이하 WHO)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심리적 외상도 간과될 수 없는 요소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이재민 알릭 씨는 “아이들이 지진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피해가 심화된 원인

이번 지진의 피해를 키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질학적 요인이다. 튀르키 예는 △아나톨리아 지각판△아라비아판△아프리카판△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지진이 활발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이번 지진은 아라비아판이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아나톨리아판과 충돌해 발생했다. 특히 진원이 대표적인 주향이동단층*인 동아나톨리아 단층에 존재했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된다. 단층이 수평으로 이동해 건물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피해가 심화된 것이다. 또한 진원까지의 깊이가 18km로 얕 았다는 사실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에 크리스 엘더스 호주 커틴 대학교 교수는 “진원의 깊이가 얕으면 지진에 의해 방출된 에너지가 지각 깊숙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강도로 표면에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진원이 지표면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증폭돼 피해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 지진 활동이 일어나지 않아 에너지가 축적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로저 머슨 영국 지질조사국 연구원은 “1822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마지막 대지진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축적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튀르키예 정부의 부실한 내진설계 규정도 피해를 심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1999년 튀르키예에선 북서부 대지진으로 1만 7천여 명이 사망한 이후 내진설계 규정이 강화됐지만 건물의 개·신축 과정에서 이가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 튀르키예에선 1960년부터 건조물이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기간 벌금 등의 행정처분 부과를 면제 하는 양성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에 전문가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 고 규제 완화와 방만한 관리로 부실 건물이 양산돼 결국 지진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제도로 남부 지진 피해 지역에서만 최대 7만 5천 채의 건물이 양성화됐다.

 

시리아에선 내전의 여파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가중시켰다. 시리아 정 부와 반군이 대치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구조나 원조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가 모든 원조 물품을 자신의 관할권 아래에 있는 다마스쿠스(Damascus)로 보낼 것을 요구하면서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구 호활동에 제약이 발생한 것이다. 화산학자 빌 맥과이어는 “시리아에서는 이미 10년 이상에 걸친 전쟁으로 많은 구조물이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시리아 북부에는 내전을 피해 이주한 다수의 피난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결국 장기간 내전의 영향으로 약화된 건물이 지진으로 붕괴되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대응

이번 지진의 피해 수습과 복구를 위해 국제적인 지원과 원조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우리나라는 튀르키예에 △수도권119특수구조대△소방청중앙119구조본부△육군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외교부△한국국제 협력단(KOICA) 요원들로 구성된 118명 규모의 긴급구호대를 파견했다. 이후 사망자가 늘어나고 매몰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수색 구조보단 이재민 구호에 중점을 두는 21명 규모의 구호대 2진이 튀르키예에 추가로 파견됐다. 튀르키예에 500만 달러(약 63억 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과 구호 물품 제공도 결정됐다. 시리아는 우리나라와 미수교 상태인 만큼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이 조달될 예정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인도적 원조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 는 최소 19개의 회원국이 원조에 참여한 가운데 튀르키예에 파견될 구조·탐색작업 부대가 규합됐다. 또한 스페인은 드론·의료인력과 함께 튀르키예에 부상자 치료를 위한 야전병원을 설치했고 핀란드는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숙소△식량△의료품 등을 제공하기 위해 100만 유로(약 13억 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California)에선 △구조공학자△탐색견△100여 명의 소방대원이 차출돼 튀르키예로 보내졌다.

 

비정부기구나 자선단체도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에 동참했다. 국제적십자 위원회는 시리아 알레포의 공공병원에 수술 도구를 제공했고 그 밖의 의료 장비를 △라타키아(Latakia)△알레포△타르투스(Tartus) 등의 도시들에 공급했다. 통조림과 침낭 등 생활필수품도 피해지역에 설치된 여러 보호소에 배급됐다. 월드비전은 구호를 위한 2,500만 달러(약 317억 원) 상당의 성금 모금을 추진하며 시리아 북서부 지역의 △구조팀△이재민△의료시설 등에 히터와 연료를 제공했다.

 

이 밖에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기부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현지에서도 이번 지진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대응이 한창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지진 발생일인 지난달 6일부 터 1주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하면서 지진피해를 입은 10개 주에 대해 헌법에 따른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한 피해 지역에 5만 명 이상의 구호 인력과 53억 달러(약 6조 7천억 원)의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 밝혔다. 시리아 는 그동안 서방 제재의 영향으로 직접적인 원조를 받지 못했지만 유럽연합 (EU)에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지난달 10일엔 반군 점령지역에 대한 구호 물품 수송을 승인하기도 했다. 압두라흐만 무스타파 시리아 임시 정부 총리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식량과 필수 보온용품 등을 지원했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만으로도 튀르키예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참사다. 사망자 수와 피해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튀르키예와 시리아 주민들의 피해회복 및 지역의 재건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주향이동단층: 단층의 상반과 하반이 단층면을 따라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단층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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