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접어들며 바람은 포근해지고 하늘은 푸르게 갰다. 잔디광장엔 사람들이 쾌청해진 초여름의 햇볕을 맞으며 옹기종기 앉아 오후를 즐기고 있다. 신록은 진녹색으로 짙어졌고 본관은 정점에서 약간 내려온 태양빛을 받아 상아색을 띤다. 우리는 광채의 선명함과 햇볕의 포근함을 자신의 삶에 주어진 조명으로 인식하며 산다. 그러나 빛을 넘어 그 조명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일은 드물다. 태양에 대해 물음을 갖는 행위는 비일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책 ‘코스모스(Cosmos)’는 그러한 비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블랙홀(Black hole)△은하△퀘이사(Quasar) 등 먼 천체들부터 △금성△목성△토성△화성과 같은 태양계의 구성원까지 이르는 방대한 세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지구 밖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류 지성의 역사와 위기△인류가 속한 지구 생명의 기원과 본질△외계 생명과의 조우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이른바 ‘신냉전’이라는 인간 무리 간의 대립이 본격화되려 하고 수억 년간 유지되던 지구 생물의 존속은 인간이란 종으로 인해 불길하게 휘청거리고 있다. 유일한 거주행성이 환경오염으로 변질돼 가는 와중에도 인간은 서로에게 핵무기를 겨누고 있다. 기술은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만큼 반목의 심도를 높여왔다. 우린 ‘나’ 라는 소우주만을 드높인 채 산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인류 인식의 역사 또한 그래왔다. 7장에서 칼 세이건은 우주관 확장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이라는 미명 아래 인류는 우주의 목적이 인간에게 향해있으며 인간이 사는 지구는 우주라는 무대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호기심은 세상을 확장시키고 선명하게 했다. 생존 본능이었던 호기심은 단순한 생존기제에서 벗어나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세상의 본질을 묻기 시작했다. 한 세대의 지적 연구는 책과 글로써 다음 세대에 전해져 이어졌다. 그렇게 과학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론 모형을 과감히 포기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무지의 세상을 밝혀왔다. 그 결과 우리는 광대한 우주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함이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가 부질없고 쓸모없다고 말할 순 없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세상을 탐구하려는 의지는 티끌만한 지구에서 태동했을지언정 위대한 것이다.
책의 제목이자 우주의 대치어로 쓰인 ‘코스모스’는 우주의 질서를 뜻한다. 온 우주 어디에서나 평등한 우주의 질서 아래 동일한 과학 법칙이 적용된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독단과 특권 의식은 코스모스 안에서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된다. 우리 모두는 별의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진 원소들의 집합체다. 넓게 보면 우리는 별의 조각으로 이뤄진 동질적 존재에 불과하다. 칼 세이건은 인류의 미래가 이러한 동질성의 회복과 전 지구적 시점에서의 공동체 의식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요즘의 밤하늘은 사람의 빛으로 희뿌옇다. 몇 광년을 날아와 아른대는 별빛은 인간의 세계에 점점 가려져간다. 다시금 인류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려 한다. 먼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코스모스에 대한 막연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상헌 기자 06h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