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평균 이상 최고 미만’이다. 어떤 걸 하든 보통 사람들 보단 잘하지만 한 가지를 특출나게 잘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항상 평균만 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산다. 외대학보 수습기자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도 기뻤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적어도 못해서 민폐를 끼칠 일은 없을거라고 스스로 자만 했다. 그러나 처음 기획 기사를 작성하며 ‘못하는 것’에 대한 벽에 부딪혔다. 당시 우리학교 연구소 문제에 대한 기사를 담당했고 글을 쓰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국부장단의 피드백을 토대로 기사를 수정했고 나중엔 처음 썼던 기사의 내용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기사가 바뀌었다. 그렇게 기사를 완성하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다음 기사는 잘 쓸 수 있을까?’란 막연한 불안감에 막막해지기도 했다. 신문이 발행된 뒤 이번 기사를 인상깊게 봤다며 주변에서 칭찬해줬지만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던지라 단지 날 위로해주려는 말이라고 생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호 기사를 써야했고 어떻게든 제안서를 제출해야 했다. 내 제안서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더 이상 우울감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학보는 그간 내 삶에 있어서 몇 없는 장벽이었지만 동시에 뛰어넘고 싶은 존재기도 했다. 제안서와 기사를 쓰며 자존감이 낮아지려 하면 스스로를 독려하려고 노력했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마음가짐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평균만 하자’에서 ‘평균 이상을 하자’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학보 활동을 이어나가려면 어중간한 마음으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배로 노력하고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신문 한 부를 발행할 수 있다. 이곳에선 애매한 정신으로 있는 것 자체가 폐가 되는 일이었다. 학보 활동을 하며 벽에 부딪혔고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다같이 글을 쓰고 회의를 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그 모든 고통을 상쇄시킬만큼 즐거웠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마감을 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으나 학보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내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를 도와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확신 덕분이다. 내가 외대학보에서 받은 도움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싶다. 모르는 게 있다면 물어보는 걸 꺼리지 않을 거고 도움을 요청하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도울 것이다. 누군가 나처럼 한계에 부딪혀 절망한다면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해줄거다. 모두가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아직 1년도 더 남은 학보 기간 동안 함께 협업하며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싶다. “할 수 있는 건 잘할거고 못하는 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학보 활동을 하는 동안 잊지 않고 계속해서 되새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