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은 온라인 작문 수업의 강사이자 272kg의 초고도비만인 주인공 ‘찰리’가 겪는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내와 8살의 딸이 있었던 주인공은 동성애자로서의 성적 지향을 뒤늦게 자각하고 가족을 내팽개친 채 남자친구와 도피한다. 그러나 찰리의 남자친구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주인공은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탄 속에서 폭식증을 앓게 된다. 지속되는 폭식으로 그의 체구는 점차 흉측해지고 건강도 빠르게 악화되지만 그는 폭식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울혈성 심부전으로 죽음이 임박한 찰리는 딸 ‘엘리’와 대면한다. 자신과 세상을 경멸하게 된 딸에게 주인공은 그녀의 재능과 가치를 일깨워 주려 부단히 노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은 주인공 앞에서 8학년 시절 작성한 자신의 ‘모비딕’ 에세이를 읽는다. 영화는 자신이 읽었던 에세이 중 가장 정직한 에세이였다는 대사와 함께 주인공이 사망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는 가끔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 그동안 저질렀던 과오와 후회스러운 일들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경우가 그렇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폭식증으로 각종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음식에 대한 탐닉을 결코 중단하지 않는다. 병원에 가라는 주변 인물의 권유에도 한사코 치료를 거부한다. 이는 주인공이 치료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모아놓은 돈을 딸에게 남겨주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의 폭식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징벌적 행위였다. 그리고 그 자기파괴와 자학을 통해 구원의 서사가 완성된다. 그 기저엔 누군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죄책감△회한이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다.
영화에서 ‘정직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는 점도 인상 깊다. 결국 구원의 가능성은 자신의 결함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에서 출현한다. 솔직하게 대면하는 행위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환상의 폐기를 수 반할 수밖에 없다. 비참을 비참으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 비참을 극복하는 일 역시 가능하지 않다. 주인공은 자신의 비루함을 인정한다. 비만으로 표상되는 자신의 죄악도 부인하지 않는다. 자신이 구제 불능의 상태임을 시인하면서 우울의 심연 속에 머문다. 그러나 동시에 끊임없이 참회하길 멈추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절망적인 인식 저편에는 역설적으로 어떤 종류의 기이한 낙관이 있다.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므로 절박하지 않다. 사죄를 받아달라는 애원도 없다. 주인공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고행을 완수한다. 이러한 진실성의 태도에서 우리는 때아닌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결국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인간으로부터 치유될 수밖에 없다.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파멸해 가는 주인공을 외면하지 못한다. 오래된 증오와 상흔 속에서도 온기와 연민은 여전히 남아서 숨쉬고 있다.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 그 자체 보다도 죄에 뒤따르는 속죄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처는 변화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둘러싼 인간 역시 변화할 수 있다. 이 변화의 가능성이야말로 인간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일지 모른 다.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