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 그 많던 꿀벌,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등록일 2023년05월24일 00시0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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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제목이다. 싱아는 개성 박적골에서 살던 박완서의 유년시절, 아무데서나 찾아볼 수 있는 들풀의 이름. 벗겨 먹으면 달콤했던 그 싱아를 누가 다 먹어버려서 서울에는 싱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걸까? 서울에는 싱아가 하나도 없고 외래종 아카시아가 있는데 아카시아 는 느끼하기만 하다. 작가는 싱아를 통해 6·25를 겪으며 잃어버렸던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움으로 호출한다. 전쟁은 박완서에게는 벌레의 시간이라는 치욕과 상처를 안겨주었고, 박완서에게 글쓰기는 그 벌레의 시간을 증언하는 일, 그러한 증언을 통해 벌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이처럼 기억 속에서나 박제된 형태로 남는 것인가. 사라진 목숨, 사라진 생명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5월 22일은 생물다양성의 날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생물들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들을 보전하기 위해 제정된 날로 우리 나라는 2010년부터 정부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정부 행사로 기념한다고는 해도 사라지는 다양한 생물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광릉요강꽃, 갯활량나물, 대청부채, 만병초, 미선나무, 복주머니난, 부채붓꽃, 섬향나무, 정향풀... 한반도 자생 멸종 위기 식물들의 이름이다. 기후변화와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영영 사라질 위험에 처한 식물이 224종에 달한다고 한다. 

 

한반도 생물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식물의 멸종 위기가 커지는 상황은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생물종 중 식물 자원의 30%가 멸종 위기에 직면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약 1300만종의 지구 생물종 중에서 2050년까지 25% 정도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 속도는 자연적인 멸종 속도에 비해 1천배가 빠른 속도라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감소되면 먹이사슬이 붕괴된다. 생물자원을 잃는 일은 인류가 기대고 있는 생존의 터전을 잃는 일, 이처럼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질문을 던져 본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지, 그 많던 꿀벌은 왜 사라졌는지,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기후위기에 대한 질문을 취업이나 생계 등 현실적인 걱정과 동떨어진 문제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리는 일은 지금 여기 삶의 터전에 대한 질문과 직결된다. 우리는 어디서 살고 있나? 우리가 몸담은 공간은 살만한 곳인가?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24.6명으로 OECD 평균 11. 1명보다 2.2배 높은 수치다.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계속 안고 가는 가운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10대에서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이다. 힘들게 낳은 귀한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놓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이렇게나 열심히 하루하루 이어가는 삶의 공간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것들을 보듬지 못하는 곳, 끝없는 경쟁 논리가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게 하는 사회에서, 청춘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사라지는 것은 꽃이나 꿀벌만이 아닌 것이다. 옛 것은 무조건 밀어대고 새 건물을 올리면서 골목이 사라지고, 골목에서 재잘대던 아이들 웃음소리도 사라진다. 경제적 불안정과 높은 양육비를 출산률 저하의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단순히 비용 문제만은 아니다. 왜 다들 그렇게 불행한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욕망을 추동하는 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과 경쟁, 생산성과 경제 논리, 이윤과 힘의 논리. 우리 사회를 추동하는 주된 힘이다. 모두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미래 세대의 행복을 고민하지 않는다. 모두가 기술 발전을 이야기하고 기술이 노동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들떠 있지만, 공생의 윤리, 공적 가치, 환경 문제는 도외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위기는 풀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생명 가진 존재들이 살아가려면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지를 돌아보지 않은 결과다. 

 

학교는 어떠한가? 사회가 요구하는 무한 경쟁의 원리를 그대로 들여온 이윤 추구의 공간인가? 혹은 이 사회의 변화를 진지하게 살피며 다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방향성을 고민하는 가치 창출의 공간인가? 위기 앞에서 우리의 반성은 이런 질문과 함께 해야 한다. 우리 몸이 깃든 지구가 정말 위기라는 현실 인식, 생명의 가치를 일상에 긴밀하게 연결하고 학문의 다양성을 살리는 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더 촘촘히 잘 하는 끈기와 지혜의 대학을 그려본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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