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지나며 교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강사는 종이로만 나누어주던 수업 자료를 파일로 나누어주고, 학생들은 교실에서 저마다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수업이 컴퓨터 화면을 마주하고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교육 현장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편리가 대세가 된 시절, 지구 건너편에서 열리는 특강에 동시 접속하여 참석하는 시대, 지하철을 힘들게 타고 와서 앉는 강의실에서 우리는 무엇 을 나누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며 돌아보니 지난 학기에 비해 다행히 이번 학기 강의실은 훨씬 발랄했고, 학생들의 글도 더 깊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시절을 보내며 학생들이 이 세계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확보하게 된 것을 확인하며 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고 SNS나 유튜브만 본다는 우려가 팽배한데, 생각해 보면 그건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카메라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며 고민하다 유튜브를 보며 아하, 수긍하던 나를 보더라도 말이다. 평면적인 읽기만을 강조하는 것이 교육현장에서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시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읽고 또 써야 하는가? 이 고민은 읽기와 쓰기의 대상, 소재와 주제뿐만 아니라 읽고 쓰는 방식에 대한 질문까지 포함한다.
최근 읽은 책『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시사점을 준다. 저자 나오미 배런은 종이, 스크린, 오디오 등 여러 형태로 나오는 읽기의 매체들을 다각적으로 살피면서 종이책을 읽는 행위가 감각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 말한다. 손가락으로 책을 만지고 책장을 넘기는 일, 눈으로 책의 디자인을 살피는 일, 코로 책 냄새를 맡는 일 등 인간 신체의 다양한 감각과 책의 물성이 만나는 과정이 중요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 성장의 단계에서 어느 단계, 가령 공교육을 하는 과정까지는 종이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AI 시대, 온라인 검색을 통한 디지털 읽기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읽기의 감각을 바꾸는 변화에 대해 저자가 우려하는 이유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기 힘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읽는 사람은 차분하게 대상을 사유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읽기 매체가 다채로워진 시대의 변화에 눈을 감고 종이책만을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을 마친 성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선택, 활용할 수 있다.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읽기의 목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왜 읽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읽는다. 길을 가다 광고를 읽고, 신문을 읽고, 시나 소설, 철학서를 읽기도 한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인간의 읽기 능력이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취하는 실용적인 읽기와 어떤 주제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읽기가 다르며, 인간의 ‘읽는 뇌’는 일정한 읽기 훈련을 통해 학습되기에 ‘읽는 뇌’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긴 소설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 유튜브에서 책이나 영화를 요약해서 알려주는 영상을 즐겨보면 ‘읽는 뇌’의 기능이 급격히 퇴화한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면밀하게 보고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우리의 책임도 더 자명해진다. AI 시대에 누가 책을 읽는가 하고 시대의 변화를 당연하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다양한 매체를 잘 활용하여 읽고 탐구하는 뇌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한다. 모르는 것은 챗GPT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말은 때로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보의 홍수에 내 판단과 사유를 맡기는 위험한 일이 된다. 문제를 탐색하는 인간이 아니라 체념적, 수동적으 로 타인의 판단에 스스로를 맡기는 인간을 기르게 된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우리 기자들은 학교 안팎의 도로 안전을 묻는 기사를 쓰기 위해 스피드건을 빌려 땡볕 거리에 나가 시간을 재면서 지나는 자동차 대수와 속도를 일일이 확인했다.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과 그에 기반을 둔 단단한 쓰기는 이를 면밀하게 읽어내는 시선과 실천으로 잇는 노력에 의해 더 빛을 발한다. 이 세계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은 편리와 효율의 잣대로만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이 다함께 주체적으로 잘 사는 방식을 고민하는 우리가 읽기와 쓰기에 깃든 자유와 책임, 교육의 문제를 더 숙고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기자들이 발로 뛴 현장의 경험들, 기사를 선별하고 글을 고치며 나눈 고민들은 모두 우리 대학을 더 좋게 만드는 과정에 동참하는 귀한 시간이었으리라.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고마움 담아 이번 학기 마지막 호를 마감한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