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 불운에 순응하며 변화하는 삶 -

등록일 2023년06월07일 00시4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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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은 1554년 출간된 작자미상의 스페인 최초 사실주의 소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작품의 작가는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자(Diego Hurtado de Mendoz)라는 귀족 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16세기 궁정관리였던 알폰소 데 발데스(Alfonso de Valdés)가 해당 작품의 작가라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작가에 관한 여러 추측이 난무하지만 아마 이 책의 작가는 영영 밝혀지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스페인 문학계에선 ‘피카레스크 소설(Novela Picaresca)’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출현해 17세기 초반까지 크게 유행했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하층계급 출신의 피카로(picaro, 악독한 주인공)가 가정과 사회를 떠나 방황하며 겪는 일들을 사실적이고 진솔하게 서술한다. 소설 속 일련의 사건들은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긴밀한 관계를 띤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소설은 가난과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했던 피카로 ‘라사리요’가 자신의 과거를 ‘각하’라고 일컬어지는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편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1인칭 자전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 라사리요는 암울한 삶으로 인해 방황하지만 결코 어둡게 살아가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에 맞서 싸우기보다 본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순응하며 성장한다. 

 

소설의 각 장에선 라사리요가 주인들을 섬기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나오는데 그의 눈에 비친 주인들 가운데 당시 스페인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성직자들이 유독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구두쇠이자 이기주의자인 마세다의 신부△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산살바도르 수석사제△사기꾼인 면죄부 포교사△세속적인 일에 열중하는 메르세드의 수도사△장사에 몰두하는 성당 전속 사제가 바로 그들이다. 이는 라사리요를 통해 당대 사회 지도층의 부패와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다만 작가는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부패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아이러니하고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이러한 표현기법을 통해 라사리요의 악독함은 약화되고 성직자들의 세속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은 부각되는 효과를 낸 것이다. 또한 이들을 섬기며 한 단계 성숙해지는 라사리요의 긍정적인 변화를 돋보이게 한다. 

 

이 소설은 출간됐을 당시엔 종교재판 금서목록으로 지정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오직 부패한 성직자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깨어있는 일부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방황하며 살아가던 라사리요의 모습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혼돈을 겪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껴진다. 스페인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소설을 읽으며 피카레스크 소설의 정수를 느껴보길 바란다. 

 

 

지명원 기자 04jimw@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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