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중국의 정찰 풍선 이 미국 영공에 침입한 사건 이후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이어 지난 21일 중국은 미국 반도체 기 업 마이크론(Micron)의 제품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본격적인 미·중 패권 다툼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강진석 우리학교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와 임대근 우리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를 만나 미·중 대립의 현황과 우리나라의 대응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Q1.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격화시킨 중국 정찰 풍선 사건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임 교수: 지난 2월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국 상공에서 발견됐습니다. 미 군은 이틀 뒤 전투기를 투입해 이를 격추했죠. 지난 2001년 일어난 9·11 테러의 경우 항공기가 납치된 사건으로 비행체 자체는 미국의 것이었어요. 물론 중국의 정찰 풍선이 테러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상공을 무허가로 침범한 최초의 군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은 이를 민간 무인 비행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민감한 정보를 수집한 군사용 장비라고 못 박으면서 양국의 갈등이 고조됐죠.
Q2. 현재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명 ‘반도체 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임 교수: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지난 2019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은 중국 통신 장비 회사인 화웨이 (Huawei)의 제품 구매를 제한하는 제재 조치를 취했어요. 바이든 행정 부도 이런 기조를 이어 반도체 제조 기술 및 관련 장비를 중국에 반입할 수 없도록 했죠. 그러자 중국이 이에 맞대응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한 거예요. 중국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였죠.
Q3. 미국은 표면적으로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 협의체를 결성한다는 명분으로 칩4(Chip4) 동맹을 주도했습니다. 그 이면엔 어떤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보시나요?
임 교수: 우선 칩4 동맹이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에 관한 실무 협의체입니다. 지난해부터 논의되고 있는 사안으로 △대만△미국△우리나라△일본의 협력을 일컫죠. 현재 협의체 내에서 반도체 생산과 공급에 관한 협의까지 진행됐어요.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은 반도체 △기술△설계△장비 분야를 이끌고 △우리나라△대만△일본은 각각 △메모리 반도체 생산△비(非)메모리 반도체 생산△소재와 부품 부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공급망 보안△연구 개발△인력 개발 등을 강화 하려는 거죠. 물론 칩4 동맹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해 미국의 우방들로 이뤄진 경제 동맹을 긴밀하게 하려는 의도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어요. 미국은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정책을 구상하고 있기 에 칩4 동맹에 참여하는 4개국의 협력 아래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시도인 셈이죠. 이를 통해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이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양가적 목적을 가진다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엔 중국의 경제 성장을 억제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는 데까지도 이어질 수 있죠.
Q3-1. 우리나라의 칩4 동맹 참여에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임 교수: 중국은 우리나라의 칩4 동맹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을 유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칩4에 가입하게 되면 삼성이나 SK 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으로부터 중국에 공급되는 반도체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과 국제 전략이 지나치게 미국 지향적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어요. 특히 칩4에 대만이 참여 하면서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중국이 대만을 ‘국가’로 간주하는 협의체에 찬성할 수 없다는 정치적 입장도 존재합니다.
4. 우리나라는 반도체 전쟁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임 교수: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쟁에서 기본적으로 미국과 같은 보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정부는 칩4에 참여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지난 2월엔 칩4에 참여하는 4개국 고위급 회담을 열어 반도체 공급망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중국은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고 미국은 최대의 반도체 생산국인 만큼 칩4 동맹은 우리나라 에게 아주 곤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엔 반도체를 팔아야 하고 미국과는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우리나라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부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죠. 미국과 우리나라는 반도체 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론 반도체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 공통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어요.
Q5. 지금까지의 미·중 대립 양상을 고려했을 때 신냉전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강 교수: 최근의 움직임이 냉전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구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과거 냉전과 같이 기나긴 대결의 서막을 열 것인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려워요. 다만 최근의 미·중 대립이 과거 냉전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먼저 미·소 냉전은 정치적 국제질서 측면에서나 경제적 연맹체 측면에서 확연하게 디커플링(decoupling)*이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중 관계는 정치적으론 대결의 모양새를 취하지만 경제적으론 디커플링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예요. 반도체를 둘러싼 대립 구도에서 서로 최후의 수단까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디커플링이 실제로 성립되긴 어려운 국면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죠. 다음으로 과거 미·소 냉전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그리고 권위주의와 공산 주의 진영의 대결로써 대립 구도가 선명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 현재 중국은 덩샤오핑 노선이 수십 년간 유지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위에서 중국사회가 건립됐지만 최근 덩샤오핑의 노선이 흔들리면서 애국주의 노선이 전면에 대두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사실상 미·중 양국 모두 대내적으론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대외적으론 자유주의 무역의 끈을 유지하는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죠.
Q6. 계속되는 미·중의 패권 다툼에서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강 교수: 정말 어렵고 민감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냉정하고 웅대한 시야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주의 정치가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현실을 하나의 흐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중국이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게 미국으로선 큰 위협이겠지만 강대국과 신흥국의 대결이 역사적 필연이라면 그것이 동아시아 지평에서 위기이든 기회이든 하나의 예측적 흐름으로 바라봐야 해요. 또한 현실주의적 시각과 더불어 우리 나라의 가치와 이념으로 사태를 독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가 과거와 같은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면 독자적인 목소리와 행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독자적 행보는 한·미동맹이나 한·중우호의 관계와 결코 모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임 교수: 우리나라는 미·중 패권 다툼에서 중립을 지키는 게 최선입니다. 우리나라는 미·중 모두와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고 외교‧안 보의 측면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친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립적 태도를 통해 미·중 대립의 중재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커플링 : 국가와 국가 또는 한 국가와 세계의 경기 등이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고 탈동조화되는 현상
**투키디데스의 함정 :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뜻의 용어
조수빈 기자 05subi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