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등록일 2023년08월30일 16시1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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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죽음도 많았다. 미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상기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맏이 바트 심슨이 “올해는 내 인생 최고로 더운 여름이야”라고 말하니 아버지 호머 심슨이 이렇게 대답한다. “올해는 네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야”라고. 재치 넘치는 아버지의 대답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지구촌 곳곳이 폭염과 산불, 홍수 등 이상기후로 고통 받고 있음을 우리가 이미 실감나게 목격하고 있어서다. 기록적 폭우, 기록적 폭염, 기록적 산불이라는 말 속에서, 불탄 마을과 침수된 도로를 비추는 사진 속에서, 우리는 그 모든 비극이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불과 8년 전 2015년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 한 ‘뉴 노멀’(new normal) 기후위기가 더 이상 새로운(new)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재난 앞에서 우리를 엄습하는 감정은 불안, 두려움, 무력감이다. 인류애를 앞세운 공동의 감각과 사회적 자산, 제도적 안전장치를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우리의 일상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각자도생의 세계는 매일이 아슬아슬하다. 기후재난 외에도 점점 잦은 형태로 나타나는 ‘묻지 마 폭력’은 또 어떤가. 큰 불안 없이 걷던 길이 위험하다. 우리 사회가 힘겹게 쌓아올린 가치들이 무너지고, 우리는 희망보다 절망을 더 쉽게 이야기한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는 이 계절,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무엇이 가장 화급한 문제인가? 학령인구가 대폭 줄어든 현실에 적절한 대비책을 만들기도 전에 대학들은 저마다 위기 앞에서 떨고 있다. 빠져나가는 학생들에게도 속수무책,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답을 제시하기 힘들다.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에 이런저런 묘책을 궁구하는 여름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은 지난 삶을 한가롭게 반추하는 감상이 아니다. 기후재난과는 다른 차원으로 우리에겐 인구절벽이라는 사회적 위기가 닥쳤다. 이 땅이 행복한 공간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변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 이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인 동시에 대학의 존재론적 질문이기도 하다. 학생은 왜 대학에 오는가? 대학에서 무얼 배우는가? 대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비용은 그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교/강사들과 직원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대학의 수명, 지식의 수명은 어떻게, 무엇이 결정하는가? 

 

과거, 사회의 가치 전반에 대한 단단한 토대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던 대학이 오늘날 먼 얘기가 되었다 해도,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위축되었다 해도, 이상과 현실을 함께 바로 보는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묻는 것은, 단순히 기후재난 시절의 위기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오는 학생 들을 잘 길러내야 하는 대학의 현실적 고민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일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적 자산을 축적하는 대학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직면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을 우리가 계속 고민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지역과 국경을 넘어 이 세계에 닥친 재앙들과 이를 대비하는 실천적 과제를 대학이라는 교육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이입하려는 노력도 이 질문 안에서 의미가 있다. 환경인문학이나 평화인문학, 의료인문학, 치유인문학, 디지털인문학 등 융/복합적으로 새로이 상상되는 학문이 대학의 교육 체제 안에 깃들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도 이 질문 안에서 더 중요해진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이미 재앙이 된 환경위기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 이 30년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없다면? 이런 질문조차 무의미해진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서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설계해야 한다. 하여 이번 학기엔 이 지면을 통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실천적 과제들을 발굴하자는 다짐을 해본다. 새로운 커리큘럼을 고민하고 교실에서 시도하는 일, 하루를 기쁘게 사는 방법, 기운 없어 처진 이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주는 일, 지금-여기를 더 가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들은 많다. 일단 우리,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므로. 무엇이라도 함께 하는 우리가 변화를 만들 것이므로.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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