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불안은 궁극적으로 소외와 고립에서 비롯된다. 소외와 고립의 징후는 의사소통의 실패에서 드러난다. 의사소통을 위해선 당사자 사이에 암묵적으로 전제되고 공유되는 공통의 의미와 경 험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다변화되고 복잡해진 현대사 회의 양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의미는 점차 협소해지고 소통의 지반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독일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역시 소통 불가능성과 그에 따른 소외와 고립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블로흐(Bloch)는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생활을 영위하는 인물이다. 건설 현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어느 날 현장 감독의 눈빛을 해고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공사장을 떠난다. 해고를 당한 이후 블로흐는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매표소 여직원과 하룻밤을 함께한다. 이어 그녀가 주인공에게 오늘 일하러 가지 않냐고 묻자 주인공은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이해하고 그녀를 살해한다. 한편 작품 어디에서도 이러한 주인공의 인식이나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타인의 판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 속에서 타자에 대한 공감은 성립할 수 없다.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가 철저한 무감함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에게서도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현상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택시 운전사가 팔을 높이 드는 블로흐의 행위를 승차의사표시로 오해하고 정차하는 장면이 그 사례다. 뿐만 아니라 ‘가시오(Geh weg)’와 ‘인도(Gehweg)’ 등 유사한 단어 사이의 혼동이 의사소통의 실패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언어 그 자체가 가진 역할에 주목한다. 동일한 대상이나 단어에 대한 각자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언어의 의미에 집착하는 것은 호소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미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언어의 의미나 내용보단 언어의 형식성으로 돌아갈 것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환원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다시 공통의 의미와 소통의 가능성을 구축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의미를 잃고 방황하며 타인에게 냉담한 블로흐의 모습은 소외와 고립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문득 외로워지는 날이면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으며 유쾌한 언어유희와 함께 블로흐의 처지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