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문자를 보냈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만나고 싶다고, 취직해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고. 아주 바쁜 나날이었지만 반가워서 바로 답을 보냈다. 얼른 만나자고. 물론 우리의 만남은 바쁜 일정 탓에 두어 번 연기되었다가 이루어졌다. 나는 만나자마자 그 학생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아직도 그 새벽의 놀라움이 잊히지가 않는다. 죽고 싶어 손목을 그었다며 사진과 함께 메일을 보내왔다. 집이 감옥이라고, 자기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날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 밥을 사주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왜 죽고 싶냐 묻지 않고 그냥 주변 이야기를 했던 듯하다. 날씨 이야기, 친구 이야기, 요즘 재밌는 일들, 힘든 일들. 이야기 중에 수업에서 같은 조를 이루어 이야기하는 다른 학생들의 안부를 묻는 걸 보고 알았다. 적어도 이 아인 죽지는 않겠구나. 사람이건, 대상이건, 다른 존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생명의 의지가 살아있다는 뜻이라고.
그렇게 불안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면서, 나는 불쑥 말했다. 죽지 말라고, 네가 죽으면 선생님이 너무 슬퍼 살아갈 수가 없을 거라고. 학생이 말없이 웃었다. 그날 이후에도 종종 안부를 물으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 많고 기대 많고 관심 많은 부모님 얘기, 그 기대가 자신을 짓눌러 허덕허덕 하는 청춘의 나날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났다. 뭘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진심에 응답해주지 않아도, 내가 내 꿈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아도, 가족 안에서 위로를 받지 못해도, 죽지만은 말라고 늘 당부했다. 네가 가장 소중한데 왜 너를 죽이냐고, 어딘가에 네게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네가 잘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학생은 죽지 않고 졸업 학점을 다 채우고,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하고 직장을 잡았단다. 이제 새로운 이들을 만나 새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단다. 물론 부모님이 기대하신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괜찮다 했다. 오늘을 견디고, 이번 한 주, 이번 한 달, 한 해를 견디며 살아가다 그 길에서 무언가 자기 목소리를 찾는 학생을 보니 모든 게 다 고마웠다.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이었다. 2003년부터 제정, 시행되고 있다. 그날의 의미를 얼마나 새겨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자살율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층위에 속한다. 최근 5년간 자살한 초중고생이 822명이라고 한다. 죽는 사람은 학생만이 아니다. 최근 5년간 자살한 공립교사가 100명이라고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잠재성을 끌어내는 공간인데, 언제부턴가 학교가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의 무덤이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 목표가 오로지 대학이 되고, 교육의 목적이 오직 상급학교로 잘 진학하는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회. 숨 막히는 경쟁을 통과하여 대학에 들어와도 좋은 직장을 잡는 목표 아래 우리 학생들은 다시 또 숨이 막힌다.
학교에서 가장 생기 있게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주체인 가르치는 이들도 이 불행한 사이클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잇따른 교사들의 자살로 드러난 학교 문제는 지금 우리가 처한 학교의 처한 위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학교 밖은 또 어떤가? 학업 중단 청소년 9명 중 1명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는 학교 밖 청소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음을 말해준다. 산재로 죽어가는 청년들의 숫자, 그리고 고립된 삶을 사는 이들의 숫자는 또 무얼 말하는가?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가치를 가르치고 나누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학교가 그런 가치를 배우고 질문하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면? 학생이 죽고 교사가 죽어 나가는 이 비극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우울과 절망의 늪에서 고민하는 우리 학생들이 많기에 이 글을 쓴다. 죽지 말자고, 다함께 서로를 잘 살피고 보듬자고. 교육 또한 사람을 살리는 건강한 가치를 지향하고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한다. 고립 속에 혼자 우는 청년들이 주변에 없는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되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돌아본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