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미래를 바라본다. 오지 않는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고, 내일을 설계하느라 오늘을 바쁘고 분주하게 보낸다. 비전이나 꿈을 이야기할 때도 늘 미래를 이야기한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상상하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하다.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불확실하기에 누구도 선명하게 말하기를 주저한다. 미래를 예견하는 일은 현재와 과거를 엄정하게 돌아보는 시선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은 어제 일은 무조건 지우면서 미래에게 달려 나가는 식이다.
올 봄, 여름 내내 AI가 몰고 올 미래의 변화에 대해 지금 내 공부와 교육 안에서 예측하고 진단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문해력, 읽기와 쓰기의 일, 정보를 접하고 나누는 일에 앞으로 변화의 폭은 매우 크겠지만, 자료를 받아들일 때 차이를 아는 능력, 제대로 질문하는 일, 개인을 넘어 함께 가는 공동의 공간을 만드는 훈련을 교육의 장에서 할 때, 새로운 디지털 감각과 함께 여전히 전통적인 읽기와 질문 방식이 유효함을 확인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복합적인 사유능력, 전체 그림을 그리면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능력,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 생각하면서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능력은 그냥 길러지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를 더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바로 과거를 돌아보고 확인하고 읽는 역사가의 눈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혼자서 수학교과서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개인 농장에 연구소를 세워 우리나라의 수학책을 모으고 관리한다고 한다. 오래된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이 만만치 않고 특히 고서의 경우 온도와 습도에 약하다 보니 혼자서 하는 게 벅차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선뜻 손 내미는 곳이 없다. 10월 5일 교과서의 날을 맞아 언론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이 안타까움이 과거와 현재를 도외시하고 미래만 바라보는 우리의 전반적인 시선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상한 미래에 아첨하느라 제대로 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 문학사의 중요한 자료들, 원고들이 방치되고 썩어가고 있다. 계간지 발간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시집 초판본이 어떠한지, 우리의 산 역사가 들어있는 낡은 책과 초라한 원고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디지털화도 원본 자료가 있어야 가능한데 말이다. 외국에서는 요리법을 적은 시인의 메모지까지 모으고 있는데 말이다. 홍범도 장군 같은 과거의 독립 운동가를 해석하는 일도, 당대의 시대적 정황 안에서 바로 보지 않고 지금의 정치적 해석에 따라서 쉽게 단정한다. 일관성 없는 과거 지우기다. 과거는 나의 편리에 따라 뒤집히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절에 빅 데이터 분석 및 활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지만, 미디어의존도가 너무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상하고 질문하는 능력,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걸으면서 주위를 살피고, 계절을 호흡하는 감각도 같이 키워야 한다. 역사가의 눈으로 면밀히 과거를 검토하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문제를 진단하고 내 옆에 누가 있는지를 살피는 일, 공생과 연대를 위한 가치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 기후위기, 인구절벽, 빈곤과 차별이 깊어가는 시절에 부자 감세를 통해 60조원 세수 결손이 야기된 상황에서 정부는 복지며 연구 등 당장 눈에 띄지 않는 부문에 들어가는 지원을 모두 줄였다. 옆을 돌아보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립된 공간에서 죽어간다. 기초 R&D예산도 대폭 삭감되어 이대로라면 3년 뒤에는 기초연구 분야의 교수가 절반만 남게 될 거라 한다.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한 의료안전망도 재원이 현저히 줄어들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의료 민영화를 비롯하여 전기, 가스, 철도 등 공공분야가 민영화된다면 자본과 이윤의 논리 속에서 일상의 삶은 그만큼 더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이 각자도생의 사회 안에서 몸부림치고, 국가는 강대국 중심의 각자도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절에 그 어떤 대안적 질서에 대한 고민 없이 우리가 외치는 미래란 무엇인가? 사회든 국가든, 공생과 연대에 대한 고민 없이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지구는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과거를 소중히 살피면서 현재의 우리를 서로 돌아보기, 아파도 괜찮고, 좀 늦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우리가 준비할 미래와 혁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