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 우리학교에서 진행했던 신입생 아카데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임교수였던 가정준 우리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은 “대학에선 배와 바다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우리학교에서 바다와 그곳에서 어떻게 항해할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자”고 하셨다. 그곳에서부터 난 세상이라는 큰 바다에 첫발을 담갔다.
대학 입학 후 나는 방황하는 아이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미래에 대해 구상했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대학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고 내가 만들었던 배는 부서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아무런 소득 없이 보내고 있었다. 이대로 첫 학기를 끝내기엔 나 자신이 용납하지 못할 것 같아 언젠가 했었던 ‘다양한 경험을 하자’는 다짐을 다시 되새겼다. 그러던 중 외대학보 107기 수습기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봤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날 외대학보로 이끌었다.
가볍게만 생각했던 학보사 생활엔 생각보다 많은 책임감이 뒤따랐다. 취재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고 인터뷰에 쉽게 응해주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기사 마감을 위해 밤을 새는 것도 체력 소모가 컸기에 힘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107기 동기들과 대화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기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원어민 친구는 내 기사를 보고 학내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매체를 찾은 것 같다며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그 말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사를 더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그 글이 타인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내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돌이켜보면 이제껏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적은 많지만 좌절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학내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유심히 살펴보고 매번 기록할 만큼 열심이었다. 또 여태까지 제안서 회의에서 내 제안서는 매번 통과됐고 기사 작성에서 힘이 들었던 적도 없다. 그러나 이번 1084호 제안서 회의 때 처음으로 제안서가 반려됐다. 거절 당하는 건 생각 그 이상으로 마음이 저리는 일이었다. 이는 외대학보에 들어온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절망△좌절△후회보다 큰 감정이 내 마 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약간의 희열이라고 할 수 있을 감정이었다.
이번 제안서 회의에서 제안서 반려라는 큰 시련을 겪고 나니 이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 번의 절망이 또 한 번의 잠재력을 낳은 셈이다. 쓰러져도 절망 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실행력만 있다면 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내 원동력이지 않을까. 어쩌면 이 원동력을 가지고 더 먼 곳을 향해 항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외대학보 활동을 통해 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고 많은 꿈들이 생겼다. 지금 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끊임없이 구상해 나가고 있다. 학보사에서의 경험은 내가 더 멀리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파도가 돼 주는 것 같다. 앞으로 외대학보에서 그려갈 3 학기 동안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 없이 즐기고 갈 생각이다. 앞으로 나만의 배를 통해 세상이라는 바다로 끝없이 항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