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몽골국립대학교’에 다녀왔다. 몽골어는 특수 어이기에 인터넷에서조차 자료가 풍부하지 않고 구글 번역기 음성 합성(TTS)도 지원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교환학생으로서 내 목표는 현지에 방문해 근본적으로 몽골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몽골에 도착한 순간부터 순탄했던 날은 거의 없었다. 처음 마주한 기숙사 시설부터 몽골의 공기까지 모두 적응하기 힘들었고 가족과 떨어져서 외국에서 혼자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틀 정도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 문득 울기만하다 교환학생을 마칠 수 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기숙사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몽골은 인터넷에서 보던 그대로 ‘한국화’가 된 모습이었다. 씨유(CU)와 지에스25(GS25) 점포는 100미터 마다 한 개씩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이마트(E-MART)도 있었다.
몽골에서의 수업은 우리나라에서보다 일찍 시작했다. 수업이 늦게 시작하는 날은 오전 9시 20분에 이른 날은 오전 7시 40분에 수업이 시작됐다. 당시 몽골의 아침 기온은 영하 30도 정도였기에 등교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리고 수업은 오로지 몽골어로만 진행됐다. 우리학교 몽골어과 교수님들은 수업 시간에 한국어를 혼용하셨기에 몽골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또한 강의의 내용도 고난도의 용어를 사용해 몽골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기에 일주일이 지나도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이 내 수준 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자신이 학생들의 실력을 감안해서 배정한 반이므로 한 달의 유예 기간 이후에도 수업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때 반을 교체해 주겠다고 하셨다. 난 섣불리 불평부터 했던 것을 반성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몽골국립대학교 페이스북(Facebook) 에 우리나라에 관심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게시했다. 몽골엔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난 그 중 한 명과 만나 친해지게 됐다. 난 그 친구와 서로 언어 교환을 하며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 다녔다. 이런 과정 끝에 한 달 전보단 실력이 향상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다양한 행사를 다녔다. 페이스북의 이벤트 페이지에서 △광장 △백화점△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진행하는 △박람회 △팝업스토어△모임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하루에 한 개씩 다양한 행사에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매일 유튜브 쇼츠 (Youtube shorts)로 기록해 약 120여개의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 적절한 몽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바로 영어를 써버린 점이다. 만약 그 당시에 끝까지 현지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면 몽골어 실력이 더 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까진 나 자신이 바르게 살고 있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만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기준을 타인에게도 요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교환학생 이후 이러한 생각이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수많은 외국인을 만나면서 세상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동안 내가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난 교환학생을 통해 느낀 이 귀중한 깨달음을 잊지 않고 열린 사고를 가진 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다.
서유리(아시아•몽골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