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내재해 있던 것일 수도 있다. 수면 아래 잠재돼 있다가 이제서야 슬그머니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폭력과 차별이 그러하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입히거나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기도 한다.
셜리 잭슨(Shirley Jackson)의 ‘더 로터리(The Lottery)’에선 공리주의 사상을 따르는 사회가 묘사된다. 작중에선 매년 제비뽑기를 통해 한 명의 희생자를 정한다. 먼저 가구별로 뽑기를 하고 거기서 뽑힌 가족 내에서 희생될 한 명을 최종적으로 뽑는다. 그리고 제비뽑기에 당첨된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제비뽑기 전통은 마을의 그 누구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존속해 왔다. 제비뽑기 종이가 담겨있는 검은색의 상자는 매년 보관 장소가 달라질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상자에 관한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제비뽑기 당첨자를 돌로 죽이는 것만이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마을 사람들은 제비뽑기하기 전이나 자신이 희생자가 아닐 땐 다들 이 전통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희생자가 되면 이 전통이 부당하다며 반대하는 모순적인 면모를 보인다. 심지어 제비뽑기가 끝난 뒤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인 사람이 희생자로 선정돼 돌에 맞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조차 이를 방관하거나 같이 돌을 던지기도 한다. 작중에선 “6월에 제비뽑기를 하면 곧 옥수수가 묵직해진다”는 말이 나온다. 희생자가 생길 때마다 한 사람분의 식량이 더 늘어나기에 이러한 전통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한 노인은 전통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제비뽑기 전통을 없앤다면 마을이 무너지고 원시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 굳게 믿기도 한다.
우리는 점차 폭력에 대해 면역력이 생기고 있다. 어쩌면 면역력이 생긴 것조차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다양한 범죄 사건들에 대한 뉴스를 보며 문제의식만 느낄 뿐 이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고도 그냥 심드렁하게 넘기기도 한다. 주 민들이 던진 돌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과 같이 증대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전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폭력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만큼 이러한 폭력이 만연해 있는 사회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또 어딘가에선 폭력이 싹트고 있을 것이다. 셜리 잭슨은 이러한 폭력의 답습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다수에 속하거나 소수로 지명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으로서의 양면성을 지닌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로도 들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내재해 있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폭력과 차별이 빛 아래로 나오면서 바래지지 않을까. 언젠간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장휘영 기자 07hwi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