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과 대학의 가능성

등록일 2023년11월08일 18시35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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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으로 배달된 책을 한 권 받았다. 파랑색 표지가 예쁜 시집이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단정하게 한 줄로 적혀 있지만 그 마음은 넉넉히 받았다. 이 분은 시민대학에서 내 수업을 여러 해 들으신 분. 은퇴 후 시민대학 인문학 수업을 받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꿈을 지펴 결국 시인이 되셨다. 벌써 두 번째 시집이다. 책을 펼쳐 본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바라보는 일상의 풍경과 마음 풍경이 잘 어우러진 고운 시들. ‘오늘의 다짐’이란 시에서 화자는 관악산 아래 개울에 발을 담근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렇게 되뇐다. “오늘의 다짐은 이 온전한 마음을 / 집에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고 고등교육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대학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만 가르치는 시절은 지나갔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문을 닫는 대학이 속출할 거라는 예상 앞에서 대학은 저마다 생존의 방식을 고민한다. 미래지향적인 다양한 전공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갈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대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회를 찾아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은 현실, 이들을 모두 막을 수도 없기에 줄어든 학생, 줄어든 등록금 수입에 대학들은 저마다 힘들다. 새로운 재정 사업을 시도하지만 교육부의 맞춤형 기획에 학교를 온전히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의 다른 가능성을 나는 평생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대학은 2015년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대학연계 시민대학에 참여해왔다. 당시 서울시에서 대학연계시민대학의 큰 그림을 그린 분이 내게 우리대학의 참여 가능성을 타진해 왔을 때, 나는 ‘세계시민교육’이라는 기획안을 냈다. 서울시와 MOU를 맺을 때, 수준 높은 인문학 교육을 해달라고 특별히 당부해온 기억도 난다. 

 

이미 먼저 시작한 대학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에 처음 시민대학을 시작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해 정성들여 프로그램을 운영할 결과, 서울 시내 참여대학 중에 만족도 1위를 여러 해 연이어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참석자들은 주로 은퇴하신 분들이었는데, 대학교수에서부터 교사, 회사원, 주부, 귀국한 해외 교포 등 다양했다. 간혹 청년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우리 학교 학생이, 혹은 대학을 그만 둔 청년이 프로그램이 재밌어 보여 찾아왔다고 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시민대학을 운영하면서 학교에 대한 홍보를 매우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우리대학이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몰랐는데 시민대학을 들으며 학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자기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 하신 분이 계셨고, 춘천에서, 분당에서 멀리서 기차와 전철을 타고 수업 들으러 오신 분들도 있었다. 

 

대학연계시민대학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진행된 평 생교육과 차별화된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평생교육은 재테크나 부동산 운영 등 실용적인 프로그램 혹은 직업훈련 교육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세계시민’을 주제로 잡아 수준 높은 인문학과 문화 융합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시민들의 높은 학구열에 잘 부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50대나 60대에 은퇴한 시민들에게 과거의 패러다임 그대로 단선적인 직업교육 중심의 평생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그 효과가 크지 않다. 시민들의 높은 지적 수준에 맞추어 역사와 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 시민들이 그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목말 랐던 지적인 욕구를 채워준다면 평생교육이 대학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일, 기후위기 앞의 세계, 전쟁과 난민, 세계시민, 문화와 연계된 고전 읽기 등은 학부 학생들에게는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연계하여 운영할 수도 있다. 그때의 시민들은 아직도 내게 연락을 하신다. 거기서 배운 힘으로 시인이 되었다고 하고, 거기서 배운 힘으로 늙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삶을 이어간다고 한다. 보내주신 시집을 읽으며 평생교육의 보람과 의미를 생각한다. 그분이 시인이 된 건 내 덕분이 아니라 그분의 역량과 노력 덕분이겠지만, 은퇴 후 꿈을 꿀 수 있는 씨앗을 시민대학에서 뿌린 것은 맞으니 내가 함께 기뻐해도 좋으리라. ‘온전한 마음’으로 살게 하는 힘. 평생교육은 분명 대학의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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