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문학을 애독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문장은 러시아의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의 작품 ‘롤리타’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문구다. 지난 1955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당대 독자들에게 매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뭇 엇갈린 평가를 낳았다. 작품의 현란하고 심미적인 문체와 정묘한 표현 기법을 들어 영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극찬한 평가가 존재하는 반면 소아성애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탓에 격렬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소설은 지난 1955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영화로 제작됐고 지난 2002년엔 노벨 연구소가 발표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선 그 문학성을 공히 인정받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험버트(Humbert)’는 문인(文人)으로서 어린 시절 정신적 외상을 경험한 인물이다. 주인공이 열세 살이었을 당시 첫사랑이었던 ‘애너벨(Annabel)’이 장티푸스로 사망한 뒤로부터 애너벨을 연상시키는 어린 여자 아이들에 대해 병리적인 성적 욕망을 느끼게 된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주인공은 하숙집을 물색하던 중 ‘돌로레스(Dolores)’ 라는 열두 살 여아를 발견하게 되고 이내 그녀에게 매혹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돌로레스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인 ‘샬롯(Charlotte)’과 결혼한다. 돌로레스와 같은 공간에서 거주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변태적 욕망은 점차 고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주인공은 돌로레스에게 ‘롤리타’라는 별칭을 붙이거나 그녀에 대한 성애적 환상을 투영한 일기를 쓴다. 결국 일기를 발견한 샬롯은 충격으로 거리를 배회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주인공은 그 사실을 돌로레스에게 숨긴 채 그녀와 성관계를 갖는다. 돌로레스는 험버트와 미국 각지를 여행하다 열병에 걸려 입원하던 중 어느 날 자취를 감춘다. 낙담에 빠진 험버트는 돌로레스가 ‘리처드(Richard)’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소설은 주인공이 열병에 걸렸던 돌로레스를 병원에서 나오도록 유인한 ‘퀄티(Quilty)’를 살해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이 철저히 험버트 개인의 시점에서 쓰였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 하다. 작품에선 사태에 대한 주인공의 주관적 인식만이 드러날 뿐 타자의 처지나 입장에 대한 고려는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폭력은 교묘히 위장된 형태를 취하게 된다. 돌로레스의 일상적인 행위를 자신을 향한 유혹으로 곡해하고 더 나아가 돌로레스를 애너벨의 대체재로 여기며 자신의 병리적인 성적 환상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게 그 예다. 생각건대 사랑이란 자아의 균열을 감수하고서라도 생경하고 불확실한 실체로서의 타자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윤리적 실천이자 실존적 결단이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돌로레스는 단순히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한 객체에 불과했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도록 권유한다. 혐오가 득세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반드시 수행돼야 할 작업이다. 거시적인 담론을 제기하지 않더라 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충돌들 역시 타자에 대한 몰이해나 타자성을 억압하려는 태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랑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상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작품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함의가 지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송성윤 기자 06sys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