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서 메디치상을 수상하고 귀국한 한강 작가를 외대학보에서 초청하여 100명 남짓한 학생들과 좋은 시간을 가졌다. 메디치 상은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도 받은 상이다. 한강 작가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영국의 맨부커상도 받았다. 이번에 메디치상을 받은 작품은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섬 인구의 1/10이 학살된 제주, 섬 전체가 거대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지금도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다. 수많은 내전들, 멀리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이 지구에서 인간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가 질문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녁 6시, 하루 수업을 마치고 모여든 학생들. 작품을 읽어본 아이들 손 들어보라고 하니 3/4이 넘는다. 놀란 작가가 안경을 고쳐 쓰고 다시 바라볼 정도다. 강연을 다녀본 대학 중 책을 읽는 참석자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강연 후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학생들의 질문이 매우 구체적이고 예리해서 다시 놀랐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험을 증언하고 기록하는 일, 발굴하고 느끼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쓰는 일, 상상은 몽환이나 비현실적인 감각이 아니라 이 세계의 현실과 밀접히 관련된 감각이다. 고통을 응시해야 하는 이유는, 고통이 바로 사람의 관계, 사랑하는 일을 일깨우기 때문이란 것. 폭력에 스러진 이들을 되살려 쓰는 것은 이들과 작별하지 않고 손을 맞잡는 게 지금-여기의 삶을 삶답게 사는 일이기 때문이란 것, 두 시간이 20분인 듯 흘렀다.
강연을 마친 후 작가는 외대 학생들이 진지하고 성실하다며, 질문을 많이 하는 것과는 별개로 외대만의 특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학생들과 마주하며 갖는 느낌과 비슷하다. 학구적이고 조용한 우리 학생들을 보면 가끔 마음 짠해질 때가 있는데, 그 느낌을 우리 대학에 처음 온 작가가 공유했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자주, 반항하고 거역하고 거스르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50대 50이 아니라 51대 49로라도 스스로 판단하는 시선을 길러야 한다고. 공정과 중립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공정의 틀을 쓴 허위를 깨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교육의 본질은 그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교육하다’의 어원을 보면 “educare – to bring up, educere – to bring out / bring forth what is within / bring out potential, ducere - to lead” 모두 무언가를 끌어내는 일이다. 학생의 내부에 깃든 잠재력과 숨은 역량을 키우는 일, 그런 초대가 교육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학교육의 핵심은 주체적으로 질문하는 인간을 키우는 것이다. 권위에 순응하지 않고, 다들 옳다고 하는 일을 다시 살피며 세계의 폐허를 응시하는 눈을 갖는 일. 그를 위한 좋은 방법을 책을 읽는 일이다.
미국의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단 하나의 단어는 ‘disobedience’ 즉 ‘불복종’이라고 했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대학살의 시대였다. 시인은 생명을 죽이고 죽이는 고리를 끊으려면 젊은이들에게 불복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작가와 무슨 이야기를 더 했던가.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폭력과 죽음이 즐비하다. 오늘날 교육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함께 잘 사는 세계를 꿈꾸게 하는 공부는 무엇일까.
작가는 문득, 학교에 나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무 사이로 벤치가 있어서 거기서 학생들이 놀고 학생들이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한다. 나는, 우리학교는 나무가 너무 많은 캠퍼스와 나무가 너무 없는 캠퍼스를 가지고 있어 이걸 어떻게 조화로이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교육 현장에 ‘나무’를 첫 조건으로 드는 작가의 시선이 신선했기에 여기 적어 기억하려 한다. 나무는 생명이고 평화이고 함께 서는 존재들의 일이기에, 생명과 평화를 키우는 일은 세계의 질서를 거스르는 힘을 키우는 일과 닿아 있기에 말이다. disobedience, 불복종, 지배 질서를 거스르는 힘을 키워 이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되물으면서 우리는 다른 세상, 더 좋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당연한 걸 다시 질문하면서 폭력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연약한 것들을 품는 시선을 키울 수 있다. 주체적인 인간을 키워내는 일, 진지함 속에서 생기와 활력을 돋우는 교육을 고민하는 아침이다.
·정은귀(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외대학보 편집인 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