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랩블루(Contents Lab.Blue)’는 국제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각국 언어와 문화에 부합하도록 현지화하는 콘텐츠 제작소다. 하나미야 마이(花宮麻衣)(영어·EICC 06) 콘텐츠랩블루 도쿄 부대표(이하 하나미야 부대표)는 이색적이고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해 이를 해외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채로운 콘텐츠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는 하나미야 부대표를 만나보자.
Q1. 우리학교 EICC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2주 동안 국제교육진흥원에서 한국의 고등·대학생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일본이 아닌 한국의 대학교로 진학하는 방법을 알게 돼 한국에서의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어는 어학원에서 금방 배울 수 있었기에 대학교에선 다른 어학 공부를 해보고 싶어 우리학교 EICC학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Q2. 우리학교 재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우리학교 EICC학과엔 원어민과 영어권에서 살다 온 학생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그들과 함께 전문적인 영어 수업을 수강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2학년을 마친 후 호주로 1년 동안 유학을 다녀오니 3학년 때부터 영어 수업을 잘 소화할 수 있었어요. 장학금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죠. 제 모국어는 일본어인데 영한 통·번역을 해야 해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과 동기들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함께 친하게 지내며 수업과 과제를 열심히 수행했죠.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을 벗어나 한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은 제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유학 생활에서의 △감정△경험△고충△친구들은 모두 제 보물입니다.
Q2-1. 대학 시절 경험했던 활동 중 어떤 부분이 콘텐츠 사업에 도움이 됐나요?
4학년 때 우리학교 졸업생이자 다양한 웹툰 (webtoon) 제작소 ‘YLAB’ 설립자인 윤인완 작가(이하 윤 작가)의 작업실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저는 바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인턴 모집에 합격한 후 윤 작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진행한 마나 프로젝트(MANA PROJECT)에 제가 참여하게 됐어요. 해당 작업에서 일본의 편집 프로듀싱(producing) 체계가 만화가와 일본 만화 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로 인해 △일본 유명 만화가△유명 영화감독△편집자△한국 유명 만화가 등 콘텐츠 사업의 중심에 있는 분들을 만나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이 제겐 좋은 거름이 됐죠.
Q3. 콘텐츠 업계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YLAB 인턴으로 일하기 전까진 평범한 독자이자 시청자로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편이었죠. YLAB에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이 됐어요. 지금까진 기존에 제작된 콘텐츠를 즐기기만 했는데 콘텐츠를 만드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자 흥분되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돼 제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전처럼 순수히 이야기를 즐길 순 없게 됐어요. 하지만 세상에 출시되지 않은 작품을 한발 앞서 볼 수 있다는 점과 내 의견과 작업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작품을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이 감격스러웠어요. 그 후 세상에 재밌는 작품을 더 많이 선보여야 겠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YLAB 인턴 활동을 마치고도 만화 번역이나 웹툰 편집자 등의 일을 계속해 왔고 지금은 콘텐츠랩블루 도쿄의 중역을 맡게 됐습니다.
Q4. 지난해 일본 웹툰 플랫폼(platform) 픽코마(ピッコマ) 내 스마툰(SMARTOON) 부문에서 콘텐츠랩블루 도쿄의 작품이 모두 1·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해외 시장에 콘텐츠를 선보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요?
국내·외용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쓰고 있습니다. 나라가 달라도 인기 있는 작품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한국에서 흥행한 작품은 어느 나라에서든 흥행하기 마련이죠. 현대인이 원하는 빠르고 통쾌한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 전개와 웹툰만의 압도적인 화려한 작화로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또한 현지화의 질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어요. 글을 어려운 문체로 쓰거나 대사를 직역만 하고 의역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도 흥행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만화 번역의 경우 단순히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선 많은 만화를 접함으로써 대사 표현에 사용되는 다양한 어휘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게 중요합니다.
Q5. 한·일 간의 콘텐츠 제작 및 수출 시 특별히 유의할 점이 있나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시대물 등의 장르보다 문화적 차이가 없는 판타지 장르가 많이 제작되는 편입니다. 특유의 문화적 색채가 너무 강한 작품의 경우 현지화할 때 한국의 설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본에 유통하는 작품도 있지만 보통 많은 작품들을 일본 설정으로 바꿔 유통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한국인의 이름이나 지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한국의 설정 그대로 일본에 유통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워 끝까지 읽는 사람도 적기 때문이죠. 또한 한국은 일본보다 만화 등급 기준이 엄격하기에 너무 과격한 묘사는 할 수 없는 반면 일본은 어느 정도 자유로운 묘사가 가능한 편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경우엔 지나치게 과격한 묘사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Q6. 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며 겪은 고충과 이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웹툰 플랫폼인 ‘코믹코(comico)’에 재직하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만화 콘텐츠의 위상이 낮았고 아무도 웹툰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웹툰을 그려줄 작가조차 구하기 힘들었죠. 그러다 코믹코에서 ‘리라이프(ReLIFE)’가 인기를 끌고 ‘외모지상주의’ 등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는 웹툰이 늘어나면서 웹툰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4년 전만 해도 한국 만화사에 원작 소설이나 만화를 라이센스 아웃(license-out)*해주는 출판사가 적었는데 꾸준히 실적을 쌓아가면서 신뢰를 얻게 됐죠. 그리고 지금 한국에선 ‘이태원 클라쓰’와 ‘나 혼자만 레벨업’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이 늘어나며 전례 없는 흥행이 일어나고 있고 일본에서도 웹툰이 주목받게 됐어요. 이에 일본 내 웹툰 스튜디오도 늘어났고 각종 대기업이 웹툰 플랫폼과 제작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형 출판사도 저희 웹툰 스튜디오에 자문하거나 공동 개발 제안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죠.
Q7. 현재 콘텐츠랩블루 도쿄 부대표로서 갖고 계신 사업적 목표가 궁금합니다.
웹툰이 인기라고는 하지만 아직 일본 만화 문화만큼의 영향력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웹툰을 읽는 독자는 라인(line)이나 픽코마 앱을 사용하는 이용자 중 일부에 불과해요. 앞으로 마케팅과 2차 유통에 힘써 웹툰 작품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늘리고 웹툰 자체의 인지도를 높여 사람들이 널리 아는 콘텐츠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Q8.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본인만의 가치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것과 한국에서의 유학 경험이 제 가치관과 감성을 구축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한다는 신념을 토대로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은 끝까지 해내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Q9. 향후 콘텐츠 산업 직종으로 진출하길 꿈꾸는 우리학교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부나 시험도 중요하지만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 힘든 일을 해보는 게 나중에 사회에 진출했을 때 도움이 됩니다. 관심 있는 것이라면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어디서 어떤 기회가 생길지 모르고 무엇이 기회로 연결될지도 모릅니다. 제 경우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우리학교에 입학해 윤 작가의 일을 도울 기회가 있었어요. 이를 통해 그냥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에 머무르는 게 아닌 한·일 콘텐츠 산업 일선에서 일할 수 있게 됐죠. 대학 시절에 배운 한국어와 영어는 지금도 업무에 활용하고 있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의 지장 없이 원활한 사업 진행이 가능하기에 어학 공부를 해두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능력은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꼭 자신의 강점을 갈고 닦으며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라이센스 아웃(license-out): 기술이나 지식재산권이 포함된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타사에 허가해 주는 것
정연아 기자 06znchu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