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쓸쓸함이 지나가고 어느덧 우리학교에도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 사람이 많은 공간을 좋아하진 않지만 휴학 후 무려 9달 만에 맞이한 북적임은 왠지 모를 울컥함과 따스한 반가움을 느끼게 해줬다. 새내기 시절 우러러보던 학교 본관과 감탄을 자아내던 신축 도서관은 이젠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이번 해는 그토록 바라던 외대학보 기자로서 학교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게 됐다.
내게 외대학보는 오래전부터 함께 하고팠던 꿈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휴학 문제로 인해 외대학보에 발을 딛는 데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선지 수습 활동을 하던 시기 나는 누구보다도 들뜬 채 적극적으로 모든 활동에 임했다. 실제 외대학보 활동을 시작한 시점에도 두려움보단 설렘과 자신감으로 제안서를 작성했다. 물론 그렇게 열정을 가득 담아낸 제안서가 반려됐을 땐 잠 시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 기사가 판단되는 그 순간이 ‘학보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 묘한 흥미를 끌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느꼈던 시기는 실제 기사를 작성하던 시점이었다. 첫 기사는 수습 기간에 적었던 모의 제안서를 바탕으로 작성하면 되는 기획 기사였기에 기사를 구성하고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은 아주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사 내용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30번 이상의 통화 시도와 10개 이상의 메시지 발송에도 불구하고 마감 직전까지 누구도 답 을 주지 않던 일주일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더디고 고통스럽게 흘렀다. 그래선지 발행을 앞둔 주말 아침에 찾아온 두 개의 메일 답장을 보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겨우겨우 그 답장에 담긴 내용을 기사에 첨부하며 기사는 단순히 글 작성 이상의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악명 높은 철야 작업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이미 군대를 다녀왔기에 날을 새는 것이 익숙하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구성원들과 함께 작업하고 소통하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기에 그 순간을 몰입할 수 있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색했던 동료 기자들과도 한 차례 동고동락하며 화기애애해진 것 같아 즐겁고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물론 아침이 밝아올 때의 적막이 내 피로감을 가중했지만 그래선지 조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거운 갑옷을 벗는 것 같은 해방감을 선사했다.
아직 외대학보에서의 시간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이 순간이 나에겐 더없이 값지고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의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협력과 열정으로 일궈내는 외대학보에서의 기사 하나하나가 먼 훗날 소중한 추억이자 내 삶의 큰 의미로 빛나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