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 다만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내가 직접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존재한다 19세기 말 독일에선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사회에 기여하는 명예로운 일로 여겼다. 한스 기벤라트(Hans Giebernath)의 주변인들 또한 그가 신학교에 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염원에 부응하듯 한스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방대한 공부량을 요하는 엄격한 신학교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신경쇠약을 판정 받아 학업을 포기한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도 한스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는다. 한스는 기계공으로 일하며 새 삶을 시도하지만 술에 취한 다음날 물에 빠진 주검으로 발견된다. 한스가 왜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한스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우리 모두 저 아이에게 소홀했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둥둥 떠다니는 수레바퀴는 계속해서 같은 원을 돈다. 이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현대인의 삶의 흐름을 의미한다. 학생은 학업에 정진하고 직장인은 출근하기 바쁘며 노인은 안정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살아간다. 인간은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한스가 물에 빠진 밤 달빛이 한스를 비춘 것은 그가 인생의 피곤함과 두려움에 지쳐 현실에 저항하지 못한 채 죽음의 그림자에 휘말린 것을 나타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미래를 꿈꾸는 삶은 현대인에겐 허황된 망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살 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삶의 주인이자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인생에서 얼만큼의 소유권을 스스로가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수레바퀴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힘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스는 교육에 대한 강박과 어른들의 고정관념이란 수레바퀴에 눌려 자신만의 사상을 가질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교육과 입시에 대해 경험해보고 고민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과 올바른 교육을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아이들이 제 나이에 경험하고 배워야할 것들 보다 입시를 위한 교육이 우선시 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에게 “우리가 아이들을 수레바퀴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미래에 대해 깊게 고민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겪을 고난의 순간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원동력은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지는 열정과 의지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길 바란다.
지유솔 기자 07yusol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