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엔 △빈부격차△전쟁△환경오염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최근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로 인해 ‘코로나 블루(Corona Blue)’란 우울증 증세가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기도 했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반 이상향 소설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선 우울증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소마(Soma)’라는 약을 먹는 모습이 묘사된다. 소마는 지금 당장의 불쾌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주고 행복감을 일으키는 약물로 묘사된다. 작중 문명인들은 여흥을 즐기고 싶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어김없이 소마를 삼킨다.
멋진 신세계에선 안정을 위해 정형화된 형태의 사람들을 육성하고 일률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인간을 모두 5개 등급의 유형으로만 한정함으로써 각 개인의 특성을 말살한 것이다. 이러한 통제의 목적은 되도록 예외와 위험이 없는 가장 안정되고 지속 가능한 형태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속에서 인간은 필요한 요소들만 주입받은 채 인간다움의 필수 요소인 주체성을 상실한 채로 살아간다. 무질서한 사회에서 문명사회로 진입한 야만인이 그들을 향해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고 소리치는 걸 보면 언뜻 완벽한 사회로 보이는 멋진 신세계가 사실은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요소를 잃어버린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멋진 신세계를 읽기 전엔 행복이란 역설적으로 불행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드시 불행한 상황이 지나야만 행복이 오는 건 아니지만 보통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암울한 시기를 딛고 일어설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이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불행이나 슬픔이 영원히 부재한 상태를 행복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이 일상이 되는 순간 진심으로 그 상태에 감사하며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건 어렵다. 난 앞으로도 주어진 상황이 불행하다면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진정한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엔 소마와 유사하게 스마트폰이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무력함△지루함△짜증을 회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는다. 스마트폰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태함에 빠져든다. 누군가는 출퇴근 시간의 스마트폰 사용을 두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합리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출퇴근의 지루함을 피하려고 애쓰는 태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소마라는 알약에 의지하며 자유가 통제된 인간과 통제된 행복에 길들여진 문명사회의 사람을 보며 이런 생각이 스쳤다. ‘과연 행복이라는 가치가 통제될 수 있는 것인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없는 채로 만족하는 삶이 과연 행복이라고 정의 내릴 수가 있을까?’ 그저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볼 때 내가 생각하는 멋진 신세계의 모습은 올더스 헉슬리가 묘사한 것과는 더욱 정반대인 것 같다는 걸 느낀다.
장휘영 기자 07hwi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