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는 유대계 독일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무력한 존재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외△ 인간 존재 이유△허무 등을 보여주는 실존주의적 작풍이 특징이다. 그는 생전 유대인이란 이유로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독창적 상상력에 기반한 △변신△시골의사△유형지에서 등 그의 다양한 작품이 사후에 공개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소설은 시골의사가 갑작스럽게 왕진 호출을 받고 1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진찰을 가며 전개된다. 다른 마부를 통해 말을 빌려 겨우 찾아간 그곳엔 한 명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옆구리에는 큰 구멍이 있었고 그 속엔 이미 구더기가 번식하는 등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의사는 이를 치료할 수 없다고 부모에게 얘기했으나 그들은 믿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은 의사에게 달려들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의 옷을 벗겨라, 그래야 치료할 것이다. 그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를 죽여라! 그것이 의사일 뿐이다.” 결국 사람들에 의해 옷이 모두 벗겨진 의사는 강제로 소년의 옆에 눕혀진 채 방에 갇히게 된다. 이때 소년은 옆에 있는 의사에게 “전 선생님을 별로 믿지 않아요. 선생님은 두 발로 걸어서 온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내동댕이쳐진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를 불신한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소년에게 살 수 있을 것이란 강한 확신을 주며 동시에 큰 상처가 아니란 거짓말을 한 뒤 가까스로 그곳에서 탈출하게 된다. 결국 그는 치료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마차를 타고 왔던 길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요소는 갑작스레 진료를 떠나게 되는 시골 의사의 모습이다. 시골의사의 치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마을 사람들의 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 절대적인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추운 겨울 날씨 속 의무감 하나만으로 환자에게 가는 의사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소년의 역할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 언급한 소년의 발언은 의사가 타의에 의해 행동하는 타자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가 1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진찰을 가게 된 것은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단지 시골의사로 서의 책무로 누군가에게 쫓기듯 가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골의사의 행동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렸을 때 학원을 가는 우리의 모습부터 오늘날의 진로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번이라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뭔가를 결정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선택해주고 이끌어주는 삶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인간’으로서 주어진 선택권을 타인이 남용하도록 방관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승원 기자 08seungw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