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우리학교 자비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Vietnam) 남부 도시 ‘호찌민(Ho Chi Minh)’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베트남어과 학생들에게 베트남 연수 경험은 아주 보편적이다. 하지만 비행기 공포증이 심했던 새내기 때의 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아 보였던 동남아시아에서 혼자 공부하게 될 일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남들 다 가니까 나도 일단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동기들을 따라 호찌민에 가기로 했지만 그렇게 철없는 마음으로 신청한 연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실수를 해 출국 일자를 미뤄야 했고 비슷한 시기에 출국해 함께 현지 수업을 들으며 적응을 마친 동기들과는 달리 혼자 수업을 들으며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지고 있던 카드까지 전부 분실했을 땐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난 가족들을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새로운 카드도 받을 겸 3일이라도 본가에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호찌민에 돌아갔을 땐 마음을 다잡고 현지 생활에 집중했다. 수업과 과외를 통해 열심히 언어 실력을 키우며 현지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다 보니 베트남에서만 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함께 살았던 동기들과 놀러 다니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러 다녔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베트남쌀국수(Pho)나 우리나라 돼지갈비와 비슷한 고기가 올라가는 분짜(Bun cha)와 껌스언(Com suon) 등 맛있고 저렴한 베트남 음식들로 인해 살이 찌기도 했다. 연수 초반에 스트레스와 물갈이로 심하게 살이 빠졌던 것에 비하면 정말 큰 발전이었다. △나트랑(Nha Trang)△다낭(Da Nang)△달랏(Da Lat)△무이네(Mui Ne) 등 유명한 베트남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식견을 넓히고 예쁜 사진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물론 큰 시련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다 그 배기관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베트남에선 가격대가 높고 이동 시간이 긴 버스나 택시보다 오토바이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오토바이에 달린 배기관 온도는 최대 100도까지 올라가 위험하니 항상 주의해야 하는데 난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오토바이를 이용하다 일어난 사고였다.
결국 나는 6개월이 목표였던 연수를 예정보다 빠른 3개월 만에 끝마치고 귀국해야 했다. 베트남에서 험난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난 매번 스스로를 탓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험난한 일들조차 값진 경험이었다. 모든 상황들은 내가 겪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이었고 그걸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면 더 굳은 마음가짐으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겠지만 연수를 다녀온 것과 일찍 귀국하게 된 것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베트남에선 우리나라로 돌아간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디에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삶이란 항상 고달프지만 동시에 행복한 것이다. 요즘 나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연수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즐거움과 힘듦이 공존하는 상황에서도 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진아(아시아·베트남어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