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덕성여자대학교는 다음 해부터 불어불문학과(이하 불문과)와 독어독문학과(이하 독문과)의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기 저조 등을 근거로 두 학과에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고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할 예정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계열의 두 학과가 한번에 사라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이번 덕성여대의 결정이 다른 학교의 인문계열 학과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인문학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인문학 침체 현황△인문학 위기의 원인과 문제점△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인문학 침체 현황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및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문학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다. 1954년 외국어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우리학교는 그 특성상 인문학 침체의 중심에 서있다. 데이터 기반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어문학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학교는 지난 2022년 중국언어문화학부 내에 차이나데이터큐레이션(China Data Curation) 전공을 신설했다. 그러나 일부 학과들은 변화가 아닌 완전히 폐지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함에 따른 능동적인 대처 및 미래 경쟁력 확보를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글로벌캠퍼스(이하 글캠) 통번역대학의 △영어통번역학부△일본어통번역학과△중국어통번역학과△태국어통번역학과 4개 학과와 국제지역대학의 △러시아학과△브라질학과△인도학과△프랑스학과 4개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이와 더불어 이번 해부터는 통번역대학의 다른 4개 학과마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며 통번역대학이 완전히 폐지됐다.
한편 다음 해부터 △몽골어과△사범대학△AI(Artificial Intelligence)융합대학△KFL(Korean as a Foreign Language)학부△LT(Language&Trade)학부를 제외한 서울캠퍼스 전 학과에서 이번 해 입학 정원의 6.5%를 감축해 100명의 신입생으로 신설된 자유전공학부(설캠)가 출범하고 글캠은 우크라이나어과와 한국학과를 제외한 전 학과에서 이번 해 입학 정원의 4.5%를 감축해 자유전공학부(글캠)를 108명 증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전공학부는 상경 및 공학계열 쏠림 현상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한다. 실제로 우리학교 융합인재대학의 경우 2학년 때 자신의 전공 모듈을 정하기 때문에 특정 모듈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지난 1월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의 무전공 모집 및 자유전공학부 독려 계획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경북대학교는 다음 해부터 사범대학 유럽어교육학부의 불어교육전공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부산대학교도 이번 해부터 사범대학 독어교육과와 불어교육과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동국대학교는 2009년에 독어독문학과를 폐지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는 독일어과와 프랑스어과를 유러피언스터디즈(European Studies)전공으로 통합했다. 건국대학교는 2005년 독문과와 불문과를 EU문화정보학과로 통합했으며 2009년엔 EU문화정보학과마저 히브리중동학과와 함께 사라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매헤 발행하는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어문학 관련 학과는 2018년 920개에서 2023년 750개로 20% 가까이 줄었다. 현재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대학에 독일어 관련 학과는 52곳, 프랑스어 관련 학과는 47곳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인문학 위기의 원인과 문제점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알파고(AlphaGo) 등장 이후 인공지능과 이공계열 학과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한 반면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사회탐구영역에 응시한 수험생은 2011년 63.5%에서 2022년 52.7%로 10%p 넘게 감소했다. 또 종로학원은 2024학년도 수능에서 52%의 수험생들이 과학탐구영역을 선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이는 2022학년도의 48%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전문직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인문학 선호도 감소의 원인 중 하나다. ‘의대 열풍’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수험생들 사이에서 의과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인문계열 학생들도 전문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공인회계사 등의 시험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일명 ‘STEM’ 전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STEM은 △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의 첫 글자를 딴 말로 △과학△기술△공학△수학 계열이 미래가 유망하다고 여겨져 많은 학생들이 지망하는 전공을 모아 부르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티븐 펄스타인(Steven Pearlstein) 조지 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 행정학과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에 발행한 칼럼에서 “인문학 교육은 자유로운 생각을 통해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도록 돕는다”며 현 상황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문학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한편 인문학이 대체될 수 없다는 의견도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은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음이 온다 시즌3’에 출연하여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인류의 위기를 본다”며 “인문학이 없으면 기술만 계속 발전해 기계가 주인이 되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만들 뿐이다”고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양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2022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공계 인재들만 가지고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물으며 “나중에 잘못됐을 때 또는 이 방향이 아니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노명환 우리학교 사학과 교수는 “학문으로서의 순수 인문학만 고집하고 대중을 위한 인문학이 미비한 실정이다”며 “디지털 세계의 특성과 융합하여 세상과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심도 있는 인문학과 사회적 인문학을 조절해야 한다“며 “학교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른 학문 분야와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야 할 방향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인문학 진흥과 인재 양성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법의 제1조에선 국민의 정서와 지혜를 풍요롭게 하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우리학교는 교양교육의 독립성과 질적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양학부를 2014년 미네르바교양대학으로 확대 및 개편했으며 지금은 미네르바교양대학이 주관하는 ‘미네르바인문(1)읽기와쓰기’와 ‘미네르바인문(2)읽기와토의토〮론’ 과목이 교양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학교의 미네르바교양대학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의 학부대학 및 언더우드국제대학(Underwood International College)과 경희대학교의 후마니타스칼리지(Humanitas College) 등 많은 대학에서 교양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도 ‘코어 커리큘럼(Core Curriculum)’을 통해 학생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코어 커리큘럼은 △과학의 선구자△문학 인문학△미술 인문학△음악 인문학△코어 커리큘럼의 적용△현대 문명 등의 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코어 커리큘럼을 주관하는 컬럼비아 칼리지(Columbia College)는 이에 대해 “중요한 작품들과 현대 문제 그리고 인류에게 있어 가장 지속적인 질문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 전반의 담론과 숙고를 함양하는 공동 학습의 경험”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는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 그리고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는 ‘예일 칼리지(Yale College)’를 운영해 인문학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이공계열의 선호도가 꾸준히 증가하는 와중에도 학계는 여전히 인문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인문계열 학과가 경쟁력을 잃고 낮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으나 급속한 기술 발전에 대응할 방법을 우리가 찾아야 할 부분이다.
이승원 기자 08seungjune@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