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프랑스어는 내게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프랑스어에 대한 환상은 곧 ‘프랑스어교육학’이란 전공 선택으로 이어졌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며 꿈 꿨던 파리로의 교환학생은 내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홀로 낯선 곳에 가는 것은 22살의 내게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낯선 곳에 있단 것의 단점은 나 혼자라는 거였지만 장점 또한 혼자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파리 곳곳을 돌아다녀보니 내 내면에 여유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홀로 지내는 시간도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파견 될 학교는 동아리나 소모임이 많은 ‘파리가톨릭대학교(Institut Catholique de Paris)’를 선택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점심시간마다 학교 옆의 뤽상부르(Luxembourg)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파리의 장점 중 하나는 예술을 밀접한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루브르(Louvre) 박물관△오랑주리(Orangerie) 미술관△오르세(Orsay) 미술관 등에서 매번 다른 기획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파리에 사는 동안엔 사소한 순간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낡은 악기를 들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어르신들△노을 지는 센느(Seine) 강에서 키스하는 커플△무심코 들어간 재즈바에서 마시던 와인△에펠탑(Tour Eiffel) 앞 마르스(Mars) 광장에 혼자 앉아있을 때 말을 걸어 친구가 된 프랑스인 할아버지△하굣길에 빵집에 들러 단돈 3유로에 산 빵 3개 등 도시의 느낌도 강하지만 그 속에 여유가 깃든 파리는 내게 있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생활하다보면 꿈꾸던 파리와는 사뭇 다른 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우선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로 인해 집을 구하는 것부터 녹록치 않았다. 기숙사는 반년 전부터 이미 마감된 상태라 출국 직전에 아파트식 자취방인 ‘스튜디오(Studio)’를 따로 구했었다. 그러나 혼자 사는데도 불구하고 월세가 무려 250만 원이었다. 게다가 외식비도 비싸서 약속이 있는 게 아니면 대부분 직접 요리해먹거나 빵으로 때우곤 했다. 어쩌면 체류 기간 동안 프랑스어보다 요리 실력이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게다가 △느린 행정처리△두 번의 소매치기△비위생적인 거리△폐쇄적인 사람들 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생활을 통해 나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며 보다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확장된 시야를 얻게 됐다. 덕분에 내가 어떤 일에 자신이 있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깨닫고 더 파고들 수 있었다. 그 끝에 우리나라에 귀국한지 두 달 만에 주요 기업에서 6개월 간 근무하게 됐다. 파리에서의 경험은 훗날 겪게 될 힘들고 버거운 순간들에서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 난 마지막으로 에펠탑을 바라보며 이곳에 다시 꼭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발전하는 내가 돼야겠다.
이서현(사범·프교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