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베트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하롱베이(Vịnh Hạ Long)로 향하는 길에 들른 작은 식당에서 물갈이로 힘들어하던 나를 보고는 한 베트남 아주머니께서 걱정스레 배를 쓰다듬어 주시며 메뉴에도 없는 죽을 손수 끓여주셨다. 그 따뜻한 배려 덕분에 베트남은 내게 정이 가득한 나라로 각인됐고 시간이 흘러 난 우리학교 베트남어과에 입학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곧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에 나는 학교를 넘어 베트남 현지에 가서 우리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접하며 베트남어를 습득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내 “전략지역전문가 아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7월부터 이번 해 8월까지 하노이에서 교환학생과 인턴으로 생활했다.
지난해 2학기엔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교(Trường Đại học Khoa học Xã hội và Nhân văn) 베트남 언어문화 학과(Khoa Việt Nam học và Tiếng Việt)로 교환학생을 갔다. 난 베트남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높이기 위해 △베트남 관광학△베트남학지역학개론△현대 베트남 정치 체제의 이해 등 다양한 강의를 수강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오면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장(Lớp trưởng)의 구령에 맞춰 교수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리는 문화였다. 조별과제도 많았기에 베트남 친구들과 더 어울릴 수 있었다. 베트남어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던 난 친구들에게 밥도 자주 사주고 기숙사까지 데려다주기도 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비췄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단순히 공부에만 전념하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싶었다. 내 역량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로의 유학을 희망하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하노이 소재 유학원 수십 곳에 연락해 한국어 강사로서의 고용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베트남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거절하는 곳이 많았으나 다행히 한 곳에서 긍정적인 답장이 왔고 그곳에서 약 6개월간 한국어 강의를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그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수업 후엔 하노이 시내에서 놀거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의 유학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대사관 면접이 다가올 땐 학생들과 밤새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그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바랐고 그들이 우리나라로의 유학길에 오를 때면 직접 공항으로 가서 배웅하기도 했다.
지난 1학기에는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KOCHAM, 이하 코참) 사무국에서 인턴십을 진행했다. 첫 인턴생활을 해외에서 한다는 것이 무척 설렜고 그만큼 더욱 열심히 임하려 했다. 코참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권익신장과 원활한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고 그 과정에서 우리학교 선배들을 만나 다양한 조언도 들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베트남에 머물면서 때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짧은 인생 중 가장 보람찼던 1년으로 기억됐다. 동시에 그동안 누구보다 빠른 삶을 살아왔던 내게 베트남에서 즐겼던 조금의 여유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 줬다. 이제는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풍경도 돌아보며 여유롭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김성호(아시아·베트남어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