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의 부조리와 인간 본성의 복잡한 이중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오웰이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던 버마(현 미얀마)를 배경으로 제국주의의 어두운 이면과 그 속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냈다. 일전에 읽었던 ‘1984’와 ‘동물농장’에서도 소설 속 강렬하게 전달되는 오웰의 정치적 통찰과 제도 비판에 깊게 감명 받았었는데 이번 ‘버마 시절’ 역시 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제국주의의 잔혹함과 인간의 고뇌를 강렬하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옛 독서 경험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영국인 주인공 존 플로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근무하며 권력을 행사하지만 그 과정에서 버마 사람들의 고통과 억압을 목격하며 점차 제국주의의 부조리함을 깨닫는다. 플로리는 버마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면서도 제국주의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갈등한다. 그는 새로운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자 하지만 자신의 과거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만다. 결국 플로리는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 환경과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채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여태 읽었던 오웰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버마 시절’은 오웰 특유의 직설적이며 생생한 묘사에 기반한 문체로 인해 나를 그 시대의 모습으로 몰입시킨다. 그렇기에 ‘버마 시절’을 읽으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깊은 공감과 동시에 서늘한 고독감이었다. 플로리가 가진 버마의 풍경과 문화에 대한 애정과 제국주의의 억압적 구조 사이의 괴리로 발생하는 소외와 혼란은 내게 한 개인의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보편적일 수 있는지를 일깨워줬다. 그가 느꼈을 절망과 자괴감은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마주하는 삶의 아이러니 같았다.
특히 플로리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중 플로리는 그의 사랑이자 그가 살아가는 제국주의의 상징인 엘리자베스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했으나 그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녀에게 모욕적인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그가 느꼈을 허망함과 고통은 나에게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동시에 오웰은 이를 통해 제국주의가 단순히 피지배국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국의 개인조차 고립시키고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강하게 전달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 또한 내 삶 속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사회상에 비하면 우리들의 사회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속한 사회 구조와 제도는 때로 우리를 소외시키고 억압한다.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플로리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작품 속에서 묘사된 버마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오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현실처럼 다가왔고 마치 무대 위의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했다.
‘버마 시절’은 단순히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권력과 억압이나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와 같은 주제를 다루며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권력의 본질과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그는 단순히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낸다. 또한 그의 작품은 당시 제국주의의 부조리함을 넘어 현재의 권력 구조와 억압적 제도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만든다.
‘버마 시절’은 나에게 단순한 소설을 넘어선 깊은 통찰의 경험을 선사했다. 오웰의 생생한 묘사와 정교한 서사는 나를 플로리의 고뇌와 제국주의의 부조리 속으로 끌어들였고 이로 인해 나는 권력과 억압의 복잡한 관계를 다시 한번 성찰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성찰과 행동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병찬 기자 08byeongcha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