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슬픔> - 우리에겐 고귀한 슬픔이 필요하다 -

등록일 2025년03월19일 00시0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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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소설 중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베트남 땅에서 베트남 사람이 직접 겪은 전쟁을 사실적이면서도 수사적으로 풀어낸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전쟁 문학을 넘어 △동료애△연인 간의 사랑△전후 세대에 대한 성찰을 끌어낸다. 나아가 작가는 주인공과 글쓰기를 연결해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담담히 묘사한다.

 

주인공 ‘끼엔(Kin)’은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평생의 사랑을 맹세한 연인 ‘프엉(Phương)’을 뒤로한 채 북베트남의 진영에서 남베트남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끼엔’의 아버지는 화가였고 ‘프엉’을 둘러싼 가족들 역시 전쟁의 이념과 무관한 자들이었으나 끼엔은 그들과 다르게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베트남 전쟁 동안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동료를 잃고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린다. 동시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무수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8년간의 전쟁 이후 ‘끼엔’은 기적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프엉’은 이미 다른 남자와 함께였다. 그러나 그녀는 ‘끼엔’을 마주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고향을 떠나고 만다. 이후 ‘끼엔’은 전쟁에서 겪었던 경험을 소설로 써야 한단 의무감에 사로잡혀 글을 통해 전쟁의 순간들을 해후한다.

 

‘전쟁의 슬픔’은 시간순으로 전개되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겪은 사건들이 군데군데 배치된 수필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전쟁에서 겪었던 여러 일화를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낸다. 작가는 ‘베트남 전쟁이 막 끝나고도 군인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물건들을 마구 부수고 있었다’고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한다. ‘끼엔’은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 지난 후에도 선풍기 소리를 헬기 프로펠러 소리로 착각할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의 삶엔 ‘전쟁이 일어나기 전 프엉과의 사랑’과 ‘전쟁이 끝난 후 프엉에 대한 사랑’ 단 두 개밖에 없었다.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담담히 그려내며 전쟁이 끝나버린 비극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끼엔’은 자신의 소설 속에 전쟁과 사랑을 담아내며 전쟁의 슬픔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에게 슬픔이란 단지 전쟁이 남긴 상처의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고귀함이었다. 그는 작품 속 소설을 통해 슬픔을 전쟁 세대만의 몫이 아닌 전후 세대와 함께 공유한다. 그가 잃은 △동료와의 우정△연인과의 사랑△평범한 일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전쟁 전 ‘끼엔’이 잃어버린 평화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와 다를 바 없음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이 세계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우리의 고귀한 슬픔을 기억해야 한다.

 

 

김은희 기자 10kimeunhu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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