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랑을 통해 이 세계를 학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むらかみはるき)의 ‘사랑하는 잠자’는 벌레에서 인간으로 변한 주인공인 잠자가 사랑을 원동력 삼아 세계를 배워나가는 모습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엿본다.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잠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바닥에 발을 딛고 옷을 걸치고 문을 열기까지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왜 자신이 해바라기나 물고기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의문을 품는다. 밀려온 허기에 음식 냄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모습은 아직 잠자가 인간의 모습을 한 벌레에 불과하단 사실을 보여준다.
마치 짐승처럼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는 잠자의 집에 등이 굽은 여자가 찾아온다. 열쇠수리공인 그녀는 고장 난 자물쇠를 수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그녀는 등이 굽어있는 탓에 걸을 때마다 굽실거리며 몸을 크게 뒤틀었다. 하지만 이제 막 인간이 된 잠자는 그 모습이 평범하지 않단 걸 인식하지 못한다. 네 발로 기어다니는 벌레였던 그의 시선에선 오히려 자연스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 그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듯하다. 그녀가 자물쇠를 수리하는 동안 둘은 대화를 나눈다. △속옷△신△자물쇠△탱크까지 잠자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 마구 뒤엉킨다. 하지만 엉킨 단어들 속에서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잠자가 사랑에 빠졌단 것이다.
잠자는 그녀에게 다시 만나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물쇠를 당장 수리할 수 없다며 자신의 가방에 자물쇠를 챙긴다. 그에게 자물쇠는 금기와도 같았다. 자물쇠가 고장 나서 열린 문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마주하고 그녀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자의 고장 난 제어장치를 들고 다음을 기약하며 집을 나선다. 그녀의 굽은 등을 바라보며 잠자는 “새들을 조심해요”라고 말한다. 막 벌레에서 인간이 된 그가 건넬 수 있는 진심 어린 걱정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이제 잠자는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닌 인간이란 사실에 기뻐한다. 이 세계에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지만 인간으로서 마음속 온기를 느낄 수 있단 사실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는 옷을 올바르게 입는 방법부터 배우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세계를 학습한다. 옷 입는 방법을 몰라 천을 몸에 두르고 있던 잠자는 그녀를 통해 옷을 올바르게 입는 방법을 배울 결심을 한다. 나아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호기심을 품는다. 사랑이 그에게 배움의 동기가 된 것이다. 소설 말미에 잠자는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둘이서 나란히 오르내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계단은 두려운 존재였다. 처음 계단을 내려갈 때 그는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자연스럽고 위험한 계단이란 곳에 왜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고 싶단 잠자의 다짐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이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사랑은 부자연스럽고 위험한 이 세계에 우리의 몸을 던질 때 손을 잡아줄 것이다.
박지연 기자 10jiyeo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