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桐島、部活やめるってよ)’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배구부 에이스인 ‘키리시마(桐島)’가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며칠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키리시마의 시점을 보여주지 않고 그는 스크린 타임 내내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키리시마의 부재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게 집중하며 그가 사라진 자리를 통해 고등학생들의 관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야구부△영화부△취주악부 등 다양한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의 시선을 통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청춘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영화엔 실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혹은 타인에게 부끄럽단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는 학생들이 등장한다. 반면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묵묵히 당장의 즐거운 일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대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해 왔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 어떤 일은 단순한 취미로 끝나기도 하고 어떤 일은 힘든 노력이 수반되는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즐거움이란 감정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난다. 잘하지 못하면 창피한 일이 되고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성과가 없으면 의미 없는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놓치곤 한다. 영화 속 인물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히로키(宏樹)’는 ‘마에다(前田)’에게 왜 영화를 찍냐고 묻는다. 마에다는 영화감독이 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주 가끔씩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라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히로키는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끝까지 해야 한단 단순한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의 어려움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야구를 그만둔 ‘히로키’처럼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우리 또한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선택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각자의 인생의 우선순위는 서로 다르고 한 개인의 인생에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기에 단정 지을 순 없다. 당장은 가장 하고 싶은 일도 가까운 미래에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든 계속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단 것이 부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할 수 있단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리고 매 순간을 좋아하는 일로 채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청춘을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방식이 아닐까?
윤고은 기자 10goeun@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