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철학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정언 명령’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무조건적 명령 ‘~하라’의 형태를 빌어 표현한 문장을 일컫는다. 낯선 개념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은 많은 순간이 정언 명령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가방을 멘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치열한 경주였다. ‘남들을 뛰어넘어라’라는 정언 명령은 스스로를 뒤돌아 볼 틈도 없게 만들었으며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결국 ‘잘해야 한다’의 강박에 빠진 현대인들은 본인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심한 좌절을 겪으며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기억도 나지 않은 정도로 오래된 이 강박은 뜨거운 열정과 섞여 때론 역겨운 냄새까지 나는 듯하다. 언제부터 우리 마음에 이런 정언 명령이 자리잡은 것일까. 원인을 하나로만 규정하긴 어렵겠지만 경쟁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Ideologie)임은 틀림없다.
대체 ‘잘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통상적으로 특정인이 일반인보다 업무 수행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 ‘잘한다’라는 속성을 부여한다. 즉 이는 타인과 비교할 때만 드러나는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잘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다. 인력도 하나의 상품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며 값어치를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남들과의 비교 경쟁에서 우위를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임에도 사람들은 이를 잊고 달리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처음으로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것들을 충분히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어쩌면 일생에서 다시 없을지 모르는 이 시간에도 우린 꼭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가?
지금은 ‘잘할 필요’는 없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 시간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가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랜 시간 동안 어깨에 메고 다닌 짐을 잠시 내려두자.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한 번이라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이라면 그게 나의 직업이 되더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무언가를 업으로 삼기 위해선 취미로 즐기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분명 그 일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이승원(외대학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