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판결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판결임에도 정작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판결문 속에 숨겨져 있는 논리보단 그에 따른 결과인 것 같다. 필자 역시 최근 차 한 잔의 여유를 위해 안국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목도한 풍경은 과거를 간직한 고즈넉함이 아닌 헌법재판소의 ‘정당한 판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행진이었다.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학문적 정의에 대한 치열한 토론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 오늘의 민주주의 원리를 지탱하는 큰 기둥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결은 어떠한가? 통상적으로 개별 사안이 지닌 법적 쟁점에 대해 고도로 훈련된 법관이 법과 양심에 의해 특정 결론을 내릴 때 우린 이를 하나의 판결이라고 명한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당연한 것 같지만 숨겨진 역사를 들춰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고대 로마법 시대△종교의 시대△인간의 합리성을 강조한 이성의 시대를 건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인류 역사의 산물이 바로 법이다. 비록 여전히 많은 결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이성적 사고가 만들어낸 인류의 걸작 중 하나임은 자명하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본다면 그것이 국가 조직이나 공공단체와 관련한 사항을 규율하는 공법이든 개인 사이의 재산이나 신분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사법이든 각각이 지닌 법의 역사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법에 의해 나온 판결 역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헌법재판소 및 각급 법원 앞에 모인 군중이 내는 목소리는 분명 주목할 만하다. 이는 법적 논의와 별개로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내용이 판결의 논리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결론’에 대한 비난만으로 이어져선 안될 것이다. 판결은 철저히 조문을 대전제로 또 현재 상황을 소전제로 하여 그에 따른 결론을 도출해내는 논리적인 과정을 따르는 행위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만으로 법과 그 기관들에 대한 무지성적인 비판이 가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동시에 법치주의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단지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도의 울타리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단 의미이기도 하다. 법치주의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시민들이 가져야 할 역량은 무엇인가. 설령 납득하지 못할 판결이라고 할지라도 우선은 이를 존중하고 제도적 범위 내에서 다시금 사안의 정정을 요구할 줄 아는 용기가 아닐까. 최소한 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법의 판결 자체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덕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원(외대학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