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은 16살 소년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퇴학을 당한 뒤 며칠 동안 뉴욕을 떠돌며 겪는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가족△사회△학교에 환멸을 품은 홀든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로운 떠돌이 생활을 이어간다. 사람들과의 맹목적인 만남은 오히려 그의 고립감을 더욱 깊게 만들고 그는 세상 속에서 지켜야 할 순수한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홀든은 여동생 피비(Phoebe)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붙들려 했던 것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야 할 이유’였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변화와 상처를 두려워했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며 홀든은 조심스럽게 세상과 다시 연결되려는 몸짓을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하지만 흔들림 속에서 자라나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은 홀든이라는 인물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야 하는 그 불투명한 시간들을 조심스럽게 비춘다. 세상이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느껴질수록 홀든은 더욱 막연한 이상과 순수를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서게 된다.
내가 처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입시라는 거대한 제도 앞에서 숨 막히던 나는 홀든이 보여주는 사회에 대한 반항과 냉소에 깊이 공감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필요에 따라 제도에 순응하고 사회의 규칙에 내 삶을 맞춰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나만의 순수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타협과 순응 속에서 편안함을 얻는 대신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낯설게 바라보던 시선은 희미해졌다. 다시 홀든을 떠올리며 나는 가끔 내가 놓쳐버린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과 맞서는 일은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희미해지는 순수함을 조금은 붙잡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장이라는 것은 언제나 일정한 방향을 향해 곧게 나아가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잠시 쉬기도 하며 예상치 못한 길로 돌아가는 과정 자체를 모두 사랑하고 인내하는 것이 성장임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조숙하길 요구받고 때로는 자신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시대 속에서 나는 그저 빨리 성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홀든처럼 세상의 규칙에 반항할 때도 있지만 그 규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나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나경 기자 10leenagyeong@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