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며

등록일 2016년04월26일 08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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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화사하게 교정을 물들이고 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가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993호에 내가 쓴 학술 기사 때문이다. 학술면은 정기자 시절부터 내가 가장 많이 쓴 기사다. 나의 첫 기획 기사 또한 전종근 교수님의 학술기사였다. 어쩌다 학술을 많이 쓰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매 호마다 내가 학술기사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해가 바뀌었어도 변함없이 나는 학술기사 제안서를 들고 전체회의에 참여했다. 이어 자연스럽게 교수님과 연락해 인터뷰까지 마쳤다. 교수님은 경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를 위해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지난호에 크게 오보가 났다. 학보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교수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내가 쓴 기사로 인해 학보는 나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회수됐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로써 내가 기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술 기사를 쓰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위다. 그런데 ‘차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어떤 변명이나 핑계도 통하지 않을 일이다.
사실 오보가 났을 때 제일 먼저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을 가장 많이 후회했다. 같은 동기였던 3명이 각자 자기 길을 찾아 떠나갈 때 나는 학보에 남겠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1000호를 내가 직접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학보 기자 중 누군가 나로 인해 기사를 쓰는 수고를 덜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고 5명이서 학보의 12면을 채워야한다는 부담감이 압박해왔다. 결국 내가 낸 오보로 인해 10년 동안 전례 없었던 학보 회수 사태가 벌어졌다. 5명이서 땀흘려 만든 993호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오보에 대해 스스로도 많이 상처받았다. 오보를 둘러싼 교수님들의 오해와 나의 자질 부족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생채기를 냈다. ‘내가 계속 학보에 남아야할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뒤 편집장님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두는 것이 시원섭섭하지 않고 섭섭하기만 했다. 말하고 나서야 내가 아닌 나의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관두게 되면 4명이서 학보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나뿐만이 아닌 다른 기자들도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는 조언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나태함과 무책임을 후회한다. 학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나의 책임감도 커져야 할 것이다. 존경하는 교수님 중 한분은 내게 ‘기자는 힘들어야한다’고 조언했다. 기자가 쓰는 글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다. 이 말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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