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명예훼손죄,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사이

등록일 2021년04월03일 17시1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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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형법 제307조(이하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위헌이란 헌법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긴 법률이다. 일각에선 최근 미투(Me too) 운동이나 학교폭력 폭로 등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보기도 한다. 위헌 판결에 대한 여론이 대립 중인 가운데 문재완 우리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이번 판결과 사실적시명예훼손죄 관련 사안에 대해 알아보자.

Q1. 헌재가 처음으로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결정의 취지가 궁금합니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인격권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명예훼손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사이 균형 조정이에요. 그간 사회적으로 사실적시명예훼손죄에 대한 반대가 컸습니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나라가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낮은 국가라 평가했죠. 그럼에도 헌재는 인격권 보호를 우선해 사실적시명예훼손죄를 합헌으로 결정했습니다.


Q1-1. 헌재는 판결의 근거로 우리나라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매우 제한적이라 민사적 구제 방법만으론 명예훼손 피해 회복이 부족하단 점을 들었습니다. 민사적 구제 방법엔 어떤 것이 있고 왜 이것만으론 부족한 건가요?

민사적 구제 방법엔 △사과문 게재△손해배상△정정 보도 등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 방법만으론 명예훼손 행위를 예방할 만큼 처벌이 세지 않아 형법인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어요.


Q1-2.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무엇이며 왜 우리나라에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매우 제한적인가요?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영국의 보통법에서 유래한 제도예요. 지금도 영미법계 국가인 미국에선 자주 활용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영미법계 국가는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지 않고 민사적으로 해결합니다. 이에 반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않은 대륙법계 국가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의 발전을 따라왔고 대륙법계 국가 중에서도 형사처벌을 많이 하는 나라예요. 즉 형사처벌이 이미 이뤄지고 있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이를 대신하지 않는 거죠.


Q2. 형법 제310조(이하 제310조)는 사실적시명예훼손 조항과 관련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판결에서 공익성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요?

공익이라 하면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법원 판결에선 공익성을 넓게 인정하고 있어요. 공익성의 판단 기준이 법 자체에 명시돼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판례에 따르면 특정한 사회 집단이나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한 사안도 공익성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동기가 부수적으로 포함됐다 해도 주된 동기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공익성이 인정돼요. 이번 판결에선 공익성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기에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어 위헌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판단한 거죠.
하지만 위헌을 주장하는 쪽에선 공익성의 판단 기준이 판사마다 달라질 수 있는 점을 비판합니다.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면 대중이 자신의 발언이 제310조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을지 판단하는데 모호함이 따르거든요. 때문에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단 거죠.


Q3. 사실적시 행위는 언론이 하는 일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언론은 공익성을 표방해 사실을 보도하는데 이런 일들은 제310조에 의해 항상 보호받아 왔나요?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공익성이 인정됩니다. 앞선 질문에서 말했듯 법원은 공익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요. 만약 기자가 사적 이익을 위해 기사 내용을 구성했다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언론사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소식을 전한단 목표를 천명하고 있기에 공익성이 인정돼요.
언론 보도에서 문제가 되는 건 진실성입니다. 우리나라 형법에선 사실적시명예훼손죄에 대한 위법성 면제 조항으로 제310조를 두고 있어요. 법원에선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존재하면 제310조를 인정해주죠. 기사 내용이 사실에 부합할 때 명예훼손 판결이 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명예훼손 소송은 기사 내용이 틀렸거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 발생해요. 기사 내용이 틀렸을 경우 법원이 판결하는 기준은 언론사가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의 여부입니다. 그러나 허위 정보 조작 과정을 판단하는 기준이 온전히 판사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이 역시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죠.


Q4. 최근 연예계와 체육계의 학교폭력 폭로나 미투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들은 사실을 적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활동도 공익성을 인정받아 제310조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나요?

이는 논란의 영역이에요. 공익성을 인정받기 제일 쉬운 경우는 대상이 공인인 경우입니다. 원래 공인이라고 하면 공무원, 특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고위 공무원을 칭했어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비판하는 건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체육인과 연예인 등의 인물을 공인으로 판단하는 부분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죠.
미투 운동이나 학교폭력 폭로 같은 경우는 사적인 동기보단 공적인 사회 집단을 위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에 법원 판결에서 공익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공익성을 인정받아도 결국 쟁점은 폭로 내용의 진실성으로 갈 가능성이 크죠.


Q5. 개인을 사실적시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로부터 명예훼손을 입은 사람을 어떻게 구제하나요?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을 따로 두지 않아요. 그러나 개인이 밝히고 싶지 않은 사생활에 해당하는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 처벌합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두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형사적 처벌이 아닌 △사과문 게재△징벌적 손해배상△정정 보도 등의 민사적 구제 방식을 사용합니다.


Q6. 비슷한 내용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이 위헌이란 헌법소원 청구가 7대2로 기각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위헌 청구는 그보다 위헌 의견이 더 는 5대4로 기각됐는데, 헌법재판관들의 법리적 판단이 변화한 이유가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헌법재판관 구성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당시 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 헌법소원 청구 판결을 한 헌법재판관들은 현재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요. 현 정부에서 임명한 헌법재판관들의 성향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또한 사회적 여론 변화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위헌이라 주장하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재판관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번 판결 중 ‘사실적시 자체는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므로 명예훼손이 아니다’란 반대 의견은 과거 판례엔 없던 내용입니다. 이는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진행한 학술 행사에서 발표한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정봉비 기자 02jbb@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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