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미국의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총격으로 동양인 여섯 명이 사망했다. 그중 네 명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조사 결과 범행 동기는 동양인 혐오로 드러났다. 이전에도 동양인 대상 혐오 범죄는 발생해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이후 더욱 급증했다. △동양인 차별 실태△동양인 혐오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동양인 대상 혐오 범죄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내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와 인종차별 행위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11일, 미국 정치신문매체 ‘더 힐(The Hill)’은 지난해 미국의 주요 16개 도시에서 동양계 대상 혐오 범죄가 149%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같은 해 미국 전체 혐오 범죄가 약 7% 감소한 것과 상반된다. 미국 주요 16개 지역 중 뉴욕에서 보고된 동양인 대상 혐오 범죄는 28건으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이전 2019년 뉴욕의 동양계 혐오 범죄가 3건이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겪은 피해도 적지 않다. 미국 아시아 인권단체 연합기구인 ‘아시아 퍼시픽 정책기획위원회’(A3PCON)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해 3월부터 이번 해 1월까지 총 11개월 간 미국 47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접수받은 혐오 범죄 피해 사례 약 3,800건 중 한인 대상 혐오 범죄 사건은 420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만주샤 컬카니 변호사는 “혐오 범죄와 인종차별은 아시아 이민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며 “최근엔 알래스카와 하와이 등 동양인에 호의적인 지역에서도 인종차별 신고가 접수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섀넌 하퍼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조교수와 안젤라 가버 콜로라도대 교수 연구팀은 동양인 혐오 범죄 사례와 감염병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섀넌 하퍼 교수는 동양인 혐오 범죄가 급증한 이유로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집단 등 비난할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발발했던 때 외국인 혐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감염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종과 민족에 대한 혐오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애틀랜타 총격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SNS 계정에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이 중국이라고 묘사한 사진을 게시했다.
◆ 코로나19 이전에도 만연했던 인종차별
위 연구진은 코로나19 이후 동양인 대상 혐오 범죄 증가엔 기저에 깔려있던 인종차별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인식과 코로나19로 인한 낙인찍기가 노골적인 혐오 범죄로 이어졌단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동양인 차별은 서구 사회에 만연했다. 2018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 앤 가바나’에선 중국인 여성이 젓가락으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이 나오는 홍보 영상을 제작해 논란이 일었다. 또한 2019년엔 미국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버거킹’이 인종차별적인 광고를 제작해 뭇매를 맞기도 했다. 광고에선 동양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햄버거를 힘겹게 먹으려는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버거킹 본사는 광고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미국 대학의 입시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018년 9월 고등교육 전문매체 ‘인사이드하이어에드(Inside Higher Ed)’가 미국 전역의 관리급 입학사정관 4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6%가 ‘일부 대학은 동양인 지원자에게만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고 답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대학교(이하 하버드대)의 잘못된 ‘소수계 우대정책’ 적용이 있다. 하버드대의 소수계 우대정책은 집단 내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백인을 제외한 △동양인△흑인△히스패닉 등에게 상위권 대학 입학이나 고용 등이 가능하도록 가점을 주는 제도다. 그러나 하버드대는 동양인 학생의 입학 성적이 압도적으로 상위권에 포진하자 소수계 우대정책으로 동양인의 입학 정원을 제한했다. 소수계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억압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하버드대는 입시 전형에서 동양인 학생에게만 ‘호감, 인성’ 등의 추상적인 평가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미 법무부는 같은 해 8월 의견서를 통해 동양계 학생에게만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한 건 불법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소수계 우대정책을 이용한 동양계 차별에 대해선 명확한 제재를 하지 않았다.
◆ 동양인 혐오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과 대처
지난달 16일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여러 지역에선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을 비판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을 지지하는 ‘Stop Asian Hate’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 집회엔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중심으로 약 5,000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21일 산드라 오 한국계 미국인 배우는 피츠버그에서 열린 집회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를 멈추는데 동참해 달라”고 연설했다. 또한 SNS에선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시작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에 이어 ‘아시아인의 생명도 중요하다(Asian lives matter)’는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미국 하원 의회는 동양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주제로 34년 만에 청문회를 개최했다. 동양계 의원들이 대거 출석한 이 청문회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추모하며 시작했다. 영 김 한국계 공화당 의원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동양인에 대한 폭력과 공격이 늘어나는 시점에 발생했다”며 “동양계 미국인 사회에 대한 증오와 공격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2일 미국의 민주당 의원들은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같은 달 26일을 ‘행동하고 치유하는 아시아 증오 중단의 날’로 선포했다. 지난달 1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애틀랜타를 방문해 우리나라 지도자를 비롯한 동양계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동양계 미국인을 노린 증오 범죄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선 동양계 미국인 대상 폭력과 혐오 사건에 대응하는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코로나19 보건 형평성 전담조직의 불평등 해소 권고안 제시△법무부의 동양계 대상 폭력 사건 관계 기관 활동 조율△동양계 미국인에 대한 인식 증진 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기존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은 코로나19를 계기로 혐오 범죄란 형태로 표출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에서 가시화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신수연 기자 02shinsoo@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