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까진 누구나 그렇듯 지정된 시간에 정해진 공부를 하도록 강요받았다. 대학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이젠 그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상적이지 않았다. 들어야하는 과목도 필수로 정해져있었고 가야하는 과행사도 정해져있었다. 여전히 답답하게 옥죄어오는 생활에 숨이 턱턱 막혔다. 왜 내가 이런 선택을 한건지에 대해 내 자신을 수 없이 원망했다.
지금 와서야 깨달은 사실은 대학 생활에 대한 넘치는 희망 자체가 부질 없었다는 거다. 난 항상 미래가 긍정적이기만 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겠지’, ‘동기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겠지’, ‘우리 학교가 날 행복하게해주겠지’ 등의 희망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어쩌면 집착을 버리는 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싶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받지도 못했고 교외활동도 해봤지만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그게 나였다.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마’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나처럼 어중간한 스타일을 미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날 싫어한다고 해서 나도 날 싫어하긴 싫었다. 게다가 모든 세상의 규칙이 ‘도 아니면 모’로 나눠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런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학보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터였다.
학보기자의 임기는 2년이다. 뭐 하나 진득하게 못하는 내 성격엔 맞지 않는 활동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충동적인 성향마저 강한 나는 이미 지원서를 넣었고 학보에 합격했다. 또 생각 없이 일을 하나 저지른 것이다. 한동안은 글도 못쓰고 게으른 내가 이런 일에 덜컥 손을 뻗은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시간이 지나니 어쩌면 학보사 기자 생활을 통해서 내 성격적인 결함을 고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밖에 없는 학교생활을 평범하게 보내면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겨울방학동안 방중교육을 받았다. 희망을 품으면 그만큼 실망이 커진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지 교육에 대한 기대를 아예 하지 않았다. ‘글 못쓴다고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라고 생각한 덕분일까, 방중교육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학생들과 인터뷰도 해보고 학교 직원들과 만나기도 하고 학교를 마구 돌아다니기도 했다. 바쁜 생활은 지루함을 쉽게 느끼는 나에게 보람을 안겨줬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이상적일 순 없다. 이번호가 첫 호인데 4명이서 12면을 채워야 해서 벌써부터 체력적으로 힘이 부친다. 게다가 기자면 글만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까지 해야 했다. 아직은 학생들도 대하기 어려운 나에게 학교 안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굉장한 부담이 됐다. 그래도 나에게 이번 학기는 버티는 법을 배우는 학기라고 생각한다. 학보사 임기를 채우는 건 일종의 도전이다. 정식으로 기자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벌써부터 내가 신문을 망칠까 두렵다. 하지만 해볼 수 있을 때까진 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