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성당> - 공감의 시작에 대해 -

등록일 2025년05월07일 18시4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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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눈을 감은 채로 그와 함께 그렸다”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소설 ‘대성당’의 대사 중 하나다. ‘대성당’은 말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순간에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단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이 작품의 화자는 자기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 남성 ‘로버트’(Robert)를 처음 만나며 불편함과 거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로버트와 함께 대성당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로버트의 시각 장애가 아니다. 오히려 로버트는 세상의 표면을 보지 않고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반대로 화자는 육체적으론 ‘볼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선 늘 닫힌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어색하고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로버트가 화자의 손을 이끌어 종이에 대성당을 함께 그리는 순간 소설 내내 묘사되지 않던 감정인 진정한 공감과 연결이 처음으로 발생한다.

 

흥미로운 점은 대성당이란 공간이 두 인물 모두에게 실재하지 않는 것이란 점이다. 로버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화자 역시 티비 다큐멘터리에서 잠시 본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 속의 성당을 공유한다. 그것은 시각적 사실이 아닌 경험과 감정의 나눔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이 함께 그린 대성당 그림은 공감의 산물이다.

 

이 단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단지 그를 보고 그의 상황을 듣고 동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감은 이해를 향한 ‘능동적인 참여’에서 비롯된다. 손을 맞잡고 함께 무언가를 그리는 일처럼 상호 작용과 시간 그리고 감정의 개입 없인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공감은 상대를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경험을 이해하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상대의 세계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야 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정 타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눈을 감고 낯선 세상을 함께 그려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작은 이해가 쌓일수록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서 기자 09kimminseo@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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