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지는 백신 양극화 현상, 불평등해져 가는 세계

등록일 2021년05월16일 01시10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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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됨에 따라 백신 확보가 각국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특정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가는 백신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나라 역시 백신 수급에 차질을 겪고 있다. 백신 수급의 불평등은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가 초래하고 있다. △백신 양극화 현상의 실태△문제점△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백신 양극화 현상
현재 백신은 국가별로 불평등하게 분포돼있다. 미국 듀크글로벌보건혁신센터는 소득을 기준으로 △고소득 국가△중상위 소득 국가△중하위 소득 국가△하위 소득 국가를 분류해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백신의 보유량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고소득 국가 전체가 지금까지 확보한 백신 물량은 47억 회분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중상위 국가△중하위 국가△하위 국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은 각각 △15억 회분△7억3,100만 회분△7억 7,000만 회분에 그쳤다. 영국과 미국과 같은 고소득 국가는 인구수 2배에 이르는 백신을 확보했지만, 세계 인구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저소득 국가의 인구 대비 백신 확보량은 12%에 그쳤다. 가장 적극적으로 백신 물량 확보에 나선 곳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다. 미국은 이미 백신을 12억 회분 이상 확보했지만 13억 회분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 인구 전체가 3회 이상 접종할 수 있는 양이다. 유럽연합은 최근 코로나19 백신 제조사‘ 화이자’와 단일 규모론 역대 최대인 18억 회분의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백신의 면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3회차 접종인‘ 부스터 샷’을 위해 물량 확보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별 백신 접종률을 살펴보면 이런 추세가 뚜렷해진다. 지난달 27일 기준 백신 개발 회사를 자국에 두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국민은 각각42.15%와 49.85%가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 접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스라엘은 62.31%의 접종률을 기록하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23.7%와 21%의 접종률을 보였다. 이들은 모두 세계 평균 접종률인 7.32%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반면 아프리카 대륙의 백신 접종률은 0.9%로 세계 평균보다 현저히 낮
다. 이는 하위 소득 국가가 백신 확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단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백신 확보 역시 평탄하진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만 명분과 화이자 백신 93만 명분을 보유 중이다. 이후 6월까지 아스트라제네카 430만 명분과 화이자 275만 명분을 추가로 공급받을 예정이다. 이번 해 공급받기로 계약한 전체 물량은 7,900만 명분에 이른다. 겉보기엔 충분해 보이나 문제는 공급 시점이다. 세계적으로 백신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백신 공급이 점점 늦춰지는 추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원래 상반기에‘ 모더나’ 백신 2,000만 명분이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하반기로 연기됐다. 현재 계약된 백신 물량도 언제 밀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률 역시 5.05%로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 백신 격차로 인해 심화되는 불평등
세계적으로 백신이 불평등하게 공급된 요인엔 백신을 확보한 국가들의 자국 우선주의가 있다. 이미 국민 전체가 2회 접종하고도 남는 물량을 확보한 고소득 국가는 추가 접종을 위해 백신 수출을 제한하고 해외 백신 물량 확보에 힘쓰고 있다. 미국은 백신 관련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국제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개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신의 원료와 장비 수출을 통제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시키기로 했다. 이는 외국에 수출하는 백신 물량을 조절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이는 백신이 꼭 필요한 국가의 확보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서 다국적 공동체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이하 코백스)를 설립했다. △인도△우리나라△브라질 등의 코백스 참여국은 돈을 모아 제약회사와 백신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 뒤 개발이 완료되면 동등하게 백신 공급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현재 선진국들이 시장에 백신 물량을 풀지 않아 코백스가 확보할 물량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코백스가 확보한 물량은 11억 200만 회분으로 고소득 국가의 47억 회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결국 백신 확보 불평등은 국가별 사망자 수 격차를 야기했다.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300만 명을 넘으면서 백신 접종 격차로 인한 고소득 국가와 하위 소득 국가의 사망자 수 격차도 커졌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후 미국은 이번 해 1월 하루 4,000명대에 달하던 사망자 수가 점차 줄어 최근 수백 명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소득 국가의 사망률은 여전히 높다. 인도와 브라질의 하루 사망자는 꾸준히 3,000명대다. 이는 전 세계 사망자 수의 절반에 다다르는 수치다. 또한 백신은 불평등한 경제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0.3%p 상승한 8.4%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3%p 상승한 6.4%로 예측했다. 두 고소득 국가는 광범위한 백신 보급을 통해 내수시장을 안정화하고 공격적인 부양정책으로 빠른 경기 회복을 이끌어냈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아르헨티나 등의 저소득 국가 경제성장률은 각각 △4.2%p△4%p△5.9%p 하향 조정됐다. 이처럼 일부 국가들만의 경제 회복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으로 돈이 몰리며 하위 소득 국가의 자본유출이 빨라지고 달러 강세에 따른 하위 소득 국가의 부채 부담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수급으로 인한 나라별 불평등의 정도가 심화되는 와중에 일부 국가에선 백신 여권 추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서 도입하려는 백신 여권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단 사실을 증명하는 정보를 여권에 기록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혹은 별도의 서류나 스마트폰 앱의 형태로도 사용될 수 있다. 백신 여권은 해외 입출국 시 백신을 맞은 사실을 증명하는 용도뿐만 아니라 술집, 극장 등의 출입 자격으로 활용되거나 국내에서 고용 조건으로도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정부 산하의 인권기관은 백신 여권이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신 계층사회를 만들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백신은 법정 의무 백신이 아닌데다, 현재 세계인구 모두가 일괄적으로 접종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접종 여부로 출입을 제한하거나 고용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인권법에 위배된다. 특히 이주민 등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집단이 고용시장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단 비판이 나온다.

◆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최근 국제사회에서 백신 불평등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고소득 국가와 하위 소득 국가 간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고소득 국가가 하위 소득 국가의 취약계층을 희생하며 코로나19 발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국의 젊은 층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질병 위험이 낮은 젊고 건강한 사람들까지 접종하는 나라는 타국의 △고령층△보건 분야 종사자△취약계층의 백신 몫을 희생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인도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0만 회분을 지원하기로 했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이하 조 소장)은 현대 사회가 위험 공동체인 점을 항상 명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위험 공동체란 코로나19와 같이 근대 문명이 낳은 위험은 계급이나 빈부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치명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가령 고소득 국가가 아무리 백신을 선점해 집단면역을 형성하더라도 주변 하위 소득 국가의 코로나19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코로나19의 전파 가능성이 존재한단 것이다. 조 소장은“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을 독점하면 이를 확보하지 못한 하위 소득 국가에서 상황이 악화돼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다”며“ 고소득 국가에서 백신 관련 기술의 특허를 풀어 하위 소득 국가도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
다. 백신 불평등 현상으로 인한 문제점에 대해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봉비 기자 02jbb@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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